잘익은 아보카도라면 껍질과 과육질의 분리가 이미 이루어져 있기 십상이어서 가운데 박혀있는 씨에 닿도록 빙둘러 칼집을 낸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껍질은 쉽게 제 옷을 벗는다.
둥그런 씨를 빼낸후 가장자리 빛깔고운 연두색 치장속으로 허여 맑은 노란 속살이 드러난 부드럽고 미끌거리는 과육질 알멩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칼로 모양좋게 어슷썰어 접시에 살포시 올려낸다.
칼이 아보카도 보드라운 속살를 스윽 지나와 손바닥에 지긋이 그어질때의 그 가느다란 서늘한 감촉. 그 미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은 문득 한 기억을 불러냈다.
언젠가 생활 속에서 갖게된 궁금증을 실험을 통해 실제로 확인해보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알게된 사실이 있다. 십세 이하(10~12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정도의 아동들은 날달걀의 껍질을 깰때,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고 깨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수십명의 아이들이 실험에 참여하였고 그 가설은 상당히 타당해보였다.
손가락의 힘조절이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로, 이것에 관여하는 관절과 여러 근육들을 미세하고 정밀하게 조절하여 적절한 강도의 악력을 행사할 수 있기까지 상당한 연습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까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런 신체적인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그런 것이다. 지금은 쉽게 거뜬히 해낼수 있는 일을 그때는 다만 할 수 없었던, 그런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은 여전히 버겁더라도 후일엔 더 가볍고 여유롭게 해낼 수 있는 일들도 아마 있을 것이다.
왜 꼭 "아픈만큼 성숙해"져야 하는 걸까. 고약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많이 편안해진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