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야코블레비치 페렐만(Grigori Yakovlevich Perelman, 1966년생),
두어달 전 그에 관한 기사를 읽고 혼자 빙긋 웃었다.
페렐만 같은 괴짜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확인 만으로도 난 모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밥벌이를 위한 일을 선택할때 내가 고려하는 것들 -
정신적, 시간적 여유와 자유를 누리는 것이 물질적 풍요에 우선하므로
노동시간, 일로 인한 육체적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등은 적은 일일 수록 좋다.
벌이가 좋을 수는 없다.
대신 생활을 벌이에 맞추면 된다.
생활은 단순할 수록 좋다.
짐을 여러번 싸봐서 아는데, 사는데 꼭 필요한 것들은 사실 많지 않다.
그렇게 확보한 여유와 시간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삶이 빛이 나는 건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필즈상을 거부하고 은둔한 기이한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
2006년 수학계에서는 아주 진귀한 일이 벌어졌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필즈상의 수상을 거부하는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필즈상은 1924년 캐나다 토론토 국제 수학자 회의(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의
잉여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상으로, 노벨상에 수학분야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수학자들이
노벨상에 필적할만한 공을 세운 수학자들에게 4년에 한번씩, 만 40세미만(논문발표기준)의
수학자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매년 수상자가 나오고 나이제한이 없는 노벨상에 비해서
조건이 더 까다로워 노벨상보다 네배는 더 받기 어려운 상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당시까지 이 상의 수상을 거부한 수학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고, 이 상을 거부하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실제로 2006년에 벌어졌다.
그 사건의 주인공은 그리고리 페렐만(Grigori Perelman)이라는 러시아의 수학자이다.
그는 단지 필즈상 수상만 거부한 것이 아니고 상과 함께 주어지는 상금도 거부했다.
미국의 클레이수학연구소에서 2000년에 21세기에 수학자들이 연구할 주요 과제로서 소위 "밀레니엄
수학문제"라고 불리우는 7가지 문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문제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이유는
연구소에서 문제를 해결한 사람에게 100만달러의 상금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렐만이
증명했던 문제가 바로 클레이수학연구소가 발표한 밀레니엄 문제들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이다.
푸앵카레 추측은 위상학(Topology)이라고 불리우는 수학분야와 관련이 있는 가설이다. 위상학은
기하학의 한 분야이다. '공간'을 다루는 기하학은 근대에 들어와서 유클리드기하학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혹은 미분기하학등으로 비약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위상학
(위상수학)은 기하학이 다루는 공간을 훨씬 일반적인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학문이다. 공간이 가진
특정한 속성을 수학적 기법을 이용하여 그 일반적 특징과 성격을 유도해 내는 분야다. 예컨대 오일러(혹은 데카르트)가 발견한 다면체 공식 (꼭지점 , 모서리, 면의 수를 각각 v,e,f 라고 할때, v - e + f = 2)도 위상수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꼭지점이나 모서리와 같은 공간 내의 '위치'(topos)를 다루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그리고 오일러 등에 의해서 발견된 이 위상수학은 이후 가우스와 키르히호프, 그리고 리만의 "조합적 위상수학"과 푸앵카레의 "대수적 위상수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푸앵카레에 의해 발견된 대수적 위상수학은 우주의 모양과 구조에 대한 연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푸앵카레의 추측'이 바로 이 우주의 모양과 관련된 추측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다름아닌 지구의 사진이다. 물론
지표면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지구의
모양을 확인하는 방법은 지구 밖으로 나가서 눈으로 확인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주의 모양을 이처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모양을 '보기'
위해서는 우주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의 모양을 추측해 보는데 있어 간접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필요한 수학적 도구가 바로 위상수학이다.
푸앵카레 추측을 이용한 사고실험을 한 번 해보자. 이때 우리가 필요한 건 우주 끝까지 갈수있는
우주선과 끈 한가닥이다. 우주의 모양을 알아보기 위해 끈 한 쪽은 지구의 한 지점에 묶고 또 다른
쪽은 우주끝까지 여행할 수있는 우주선에 매단다. 그 우주선이 우주를 한바퀴 돌고 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다음 그 끈을 다시 잡아 당긴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대상이 우주가 아니라 지구라고 생각해 보자. 마찬가지로 끈을 묶고 지구를 한바퀴 돈 다음
끝을 잡아당긴다면?
아마도 위와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이미지에서처럼 끈을 회수하면 지표면을 휩싼 끈은 중간에
'막힘'이 없이 점차 한 점으로 수축할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위상수학적으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위상적 성질이 된다. 가령 도넛처럼 중간에 구멍이 뚫린
모양이라면 그 표면에 끈을 둘렀을 때 그것을 같은 방법으로 수축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런 모양 도넛 혹은 토러스(torus) 모양이라면 저 표면에 끈을 둘렀을 때에는 중간에 막히던지
아니면 표면을 건너 뛰어야 하는 사태를 감수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처럼 끈을 중간에 막힘 없이
회수할 수 있는 3차원의 구 모양과 토러스는 위상적으로 같은 (위상동형homeomorphism) 모양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푸앵카레의 위상수학에서는 따라서 구멍의 수가 중요하게 취급된다.
구멍이 없는 3차원 구 혹은 상자모양과 구멍이 1개인 토러스나 컵, 혹은 2개 이상인 토러스와 주전자
등은 서로 다른 위상적 성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구멍의 수가 같거나 구처럼 구멍이 없는
모양 혹은 공간은 위상적으로 같은 '위상동형'이 되는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푸앵카레는 이런 위상학적 성질을 우주공간에까지 확장시키게 된다. 우주에 두른 끈을 앞서 말한 것처럼 두른 다음 잡아당긴다면 지표면처럼 모두 회수할수 있을까? (한 점으로 수축시킬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결론은 '그렇다' 였다. 그것이 푸앵카레의 추측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우주의 모양'이라는 거창하고 말 그대로 우주적인 가설과 관련이 있는 “푸앵카레의 추측”은 당사자인 푸앵카레에 의해서는 증명되지 못했다. 푸앵카레 추측의 발표후 약 100여년 동안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의 증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예를들어 "덴의 보조정리(경계상의 폐곡선이 공간 내부에서 한 점으로 축소된다면 그 폐곡선은 원판의 경계가 된다)"를 증명했던 파파키리아코풀로스, 4색문제를 증명한 볼프강 하켄, 푸앵카레 추측이 5차원이상의 고차원에서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한 스티븐 스메일, 그리고 "우주는 8가지의 기본적인 모양으로 이루어졌다"라는 "기하학 추측"을 발표한 윌리엄
서스턴 등이 이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2년 가을 인터넷에 푸앵카레 추측과 서스턴의 기하학추측을 증명한 논문이 올라왔다는
소문이 돈다. 그것이 바로 페렐만이 발표한 논문이었다. 금세기 최고의 난제를 풀고도 유명 학회지에
발표하지 않고 인터넷에 논문을 올렸다. 대중과의 소통을 원했던 것이다. 기를 쓰고 외국 유명
학회지에 이름을 올리려는 우리 세태와는 비교가 된다.
수학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00만달러짜리 밀레니엄 문제가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구조를 해명하는 놀라운 과제를 러시아의 한 무명의 수학자가 해냈기 때문이다. 더우기 페렐만은 2006년
푸앵카레 증명의 공으로 수여하려던 필즈상도 거부하고,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준다는 100만달러도
거부했다.
이토록 돈에 초연한 그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갑부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러시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때부터 수학에 재능을 드러내 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해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미국의 여러 대학을 방문하며 연구하다 1995년 스탠퍼드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 영입 요청을 거절하고, 러시아로 돌아와 자기가 처음 연구를 시작한 고향 상트 페테르
부르크의 슈테크로프 수학연구소에서 잠시 근무한다. 하지만 연구소도 곧 그만두고 지금은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매월 약 5만원의 연금으로 노모와 함께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모든 공식적인 만남과 외출을 거부한 채 고향에서 버섯따기와 산책을 즐기면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삶을 선택 했을까?
최근 미국의 한 지인이 전화 통화로 그의 근황을 묻자, "지금 다른 관심사가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모든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서 그가 하는 일은 여전히 수학 연구인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페렐만이 발표할지도 모를 그 "관심사"가 궁금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또 다른 밀레니엄 문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푸앵카레 추측"에 버금가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 상상해 보는 것도 허황된 "추측"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