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할아버지   말로표현못하는어떤것
  hit : 3009 , 2010-06-16 23:42 (수)



에어컨도 빵빵하겠다, 지하철에서 신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시끄러운 욕설소리에 잠이 깨서 듣고있던 엠피의 이어폰을 뺐다.


어느 한 할아버지가 욕을 하신다.

"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말이야. 찢어져서 너덜너덜한 바지를 입지 않나, 아주그냥 짧은 것만 입어가지고 밑 다 보이겠다 이 X들아.... %$^$%&#$%#$% (그 외 욕설은...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음....)"


눈이 번쩍뜨인건, 워싱이 들어가고 무릎 부분이 찢어져있는 청바지를 입은건 나니까...
그리고 내 반대편의 여학생들은 숏팬츠를 입고 있었다.
내가 숏팬츠 입은 여학생 이었다면, 모멸감에 가득차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텐데...

문제는 할아버지가 한 욕설중에 " 니 부모가 그딴식으로 옷입고 다니는거 아냐? 아주 좋아하겠다?"라며
부모님을 언급한 이야기가 있어서 짜증이 났다.

실컷 욕을 한 후에 한참을 욕하시고는 가만히 앉아서 가신다.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그 할아버지에게로 가있었다.
정말로 다행인것은, 내가 저런 사람과 머리카락 한 올의 인연도 절대로 닿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용히 가나 싶었는데,
이젠 그 여대생들보다 좀 더 나이가 있어보이는 직장인 언니에게 다짜고짜 욕을 퍼부었다.

"야  이 x아 그렇게 입으니까 좋냐? 그게 입은거냐? 아예 벗고다니지 그래? "

" 할아버지, 상관하지 마세요"

언니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솔직히 누가 됐든 그런 상황은 짜증나니까...

" 뭐? 상관? 이X이....!!!! #$%$&^#@%$#@"

"할아버지가 보태준거 있어요? 왜 남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요? 왜 자꾸 쳐다보시는데요?"

" 보태준거 없다!!!!! 보태준거 없어!!!!!!!근데!!!!이게진짜  $#%#$^#$&$%^"

언니가 화가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손을 올리더니 높은 힐을 신은 언니를 지하철에서 밀었다.
다행히 언니는 넘어지지 않았고, 다른 아저씨들에 의해 할아버지의 행동은 저지됐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대부분의 사람들과 그 언니는 지하철에서 내리고, 그 할아버지는 지하철을 타고 갔다.


내가 직접적으로 겪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본것 자체로도 정말 짜증이 난다...
단순히 옷차림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남의 귀한자식에게 쌍욕을 퍼붓고, 부모를 욕보이고, 함부로 언행을 일삼는건지...
만약에 내가 그 입장이면 완전 흥분해서 당장 명예훼손과 성적모욕으로 신고하고도 남았다 진짜...
그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인해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은 여자로 치부된 언니의 모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겠지.....
그래도 어른이라고 욕한마디 안하고, 협박한마디도 안하고 차분하게 화내던 그 언니의 모습은 왠지 한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분명한 어른이고, 사회적으로 개인적인 권리를 행사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타인의 권리를 그런식으로 침해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이나 테두리를 인정하거나 혹은 인정하기 싫다면 무시하면 그만이지
그런식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같은 칸에 탔던 승객들이 저마다 한마디 씩 한다.
딱 세음절 단어면 된다.
또.라.이
오늘 또라이 소리만 10번넘게 들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사회적 불만이 있기에 불만을 그런식으로 표출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사회가 다 안아주지 못해서 생기는 정신적인 측면의 개인 문제일 수도 있으니,
다만 다신 지하철에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Praeterita  10.06.17 이글의 답글달기

하하 저도 그런 할아버지 만나면 엄청 기분 안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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