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산굼부리 그리고 나해철  
  hit : 3352 , 2010-07-27 21:18 (화)
두번의 패키지 여행끝에 드디어 올 여름엔 차를 빌려 제주를 둘러봤다.

우도의 아름다움은  "그 돈이면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아내의 불평을 잠재웠고
배낚시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진혁이는 이번 여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산굼부리"가  좋았다.

지금은 나해철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산굼부리"가 등장하는 그의 시 <무등에 올라>는 군대갈때 수첩에 적어갔던 세편의 시중 하나였고
이번에 산굼부리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그리운 분지 광주가 눈시울에 가득할 때
           행복했던 어느 봄 남쪽바다 제주에 보았던
           분화구 산굼부리를 생각했다.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 땅과 하늘을 태우던 용암과
           뜨거운 불 토하기를 잊은 채
           깊고 깊은 가슴의 끝까지
           푸르른 숲과 바람과 안개를 가두고 키우던
           적막의 웅덩이.
           그때 나는 여행중이었고
           햇빛과 나의 신부가 따뜻했으므로
           둥글게 가라앉은 억 년의 고요가
           차라리 평화로와 좋았다.
           절망과 희망으로 혼을 놓고 다시 깨어나는
           그 후의 몇 봄이 지나면서
           단단하여 결코 죽지 않는
           세상에 흔한 한 풀씨가 되어
           어느 날 무등에 올랐을 때
           의롭고 귀한 것을 위하여 눈물겹게 아프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침묵 속에 아름다왔으므로 오래 생각했다.
           무엇이든 없애고 새로이 일으킬 수 있는
           용솟음의 불덩이를 갈무리한 채로도
           다만 소리없이 숲과 바람, 벌레를 키우며
           참고 견디며 끝끝내 기다리던 분화구
           그리고 우리들 무등.
           깊은 소용돌이 희망의 화염을 다독이는
           넉넉한 사랑과
           끝까지 기다림에 드는 아름다움.

         - 시집 무등에 올라(1985년. 창작과 비평) 8~9쪽. "무등에 올라" 전문 -



나해철은 70년대 후반에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던 모양이다.
"절망과 희망으로 혼을 놓고 다시 깨어"나는 80년 5월을 광주에서 격으며 
그는 신혼여행에서 본 산굼부리를 떠올린다.



지금 나해철 시인은 압구정에서 성형외과를 한다.

사무실 창밖으로 <나해철 성형외과> 간판이 보이는데
압구정에서 가장 조그만 그 간판이 난 안쓰럽다.

조명도 넣지 않은 그 간판에서 
가난속에서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시인과
코를 높이고, 가슴에 실리콘을 넣어서 돈벌이를 하는 성형외과  의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자의
자괴와 부끄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PS)
그의 처녀시집(1984년, 무등에 올라)에서  햋빛처럼 따뜻해던 신부는  10년이 지나자  
"등불이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 라고 이야기 하는 시인에게
"그럼 나가서 그 등불이나 껴안아주라"고 핀잔을 하는 마누라가 된다.

환상은 결혼이라는 화학반응의 촉매다.



           자정 넘어 든 잠자리에서
              바라보는 창문에 나무 그림자가 서렸다 
              가을은 너무 깊어 이미 겨울인데 
              저 나무를 비추고 서 있는 등불은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 
              갑자기 어려져서 철없이 하는 말을 듣고 
              옆에 누운 사람이 하는 말 
              그럼 나가서 그 등불이나 껴안아주구려 
              핀잔을 준다 
              그래 정말 막막한 이 밤 등불의 친구나 될까보다 
              괜스레 마음은 길 위에 있다 

             - 시집  긴 사랑 (1995년, 문학과 지성) 12쪽. "가을 끝"  전문 -
억지웃음  10.07.27 이글의 답글달기

제주도 올 5월에 다녀왔었는데
지금 풍경은 어떨지 또 궁금해 지네요
제주도는 정말이지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이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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