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분이 좋다.   un.
  hit : 3055 , 2011-04-06 12:49 (수)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른 오전 수업이 있는데, 학교까지 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학교 오는 게 싫지는 않다.
학기 초에는 '아, 오늘도 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었다.
근데 이젠 '빨리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다.
처음 입학 했을 때는 참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았다.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는 것도,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것도, 과가 별로 없는 것도,
등록금이 비싼 것도, 우리 집에서 먼 것도.
하지만 결국 난 학교에 삐쳐 있었던 거였다.
아무도 나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따윈 안 가!' 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소통'의 기술에 대해 깨달았달까.
중, 고등학교 때 워낙 소통이나 대인 관계에 관심을 끊고 살았었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었다.
나랑 정말 잘 맞는 사람이랑 FEEL이 통해서 자연스럽게 말을 트고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운명적 우정.
그래서 인위적으로 다가가고 다가오고 하는 것에 반감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낭만이 아닌 현실을 보고 있다.
자석같이 끌리는 우정만이 우정인 것은 아니다.
우정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이다.
그 중 가장 깊은 우정이 그런 운명적인 우정이다.
하지만 늘 운명적인 친구와만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그 과정을 함께할
'친구'도 나에게는 '좋은' 친구이다. 비록 운명적이지는 않더라도.
대학을 졸업하면 보지 않게 되더라도, 적어도 몇 년 동안 추억을 함께 만들 수 있는 관계.
유한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 관계에 관해서 실천하기로 했던 두 항목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잘 실천하고 있다.
어제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한테 교수님이 밥을 사줬는데, 오리훈제초무침과 파전, 부대찌개를
사주셨고 막걸리도 한 잔 마셨다-라면서. 아직 감정표현은 없는 단순한 일상 얘기지만
그래도 나름 발전한 의사소통이다. 뿌듯♡

어제 밥 먹는 자리에서도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거의 신경쓰지 않고 그냥 내 앞에
있는 사람한테만 집중했다. 원래 같으면 그 자리의 분위기 전체를 느끼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나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를
신경 쓰느라 정작 옆자리, 앞자리에 있는 사람한테는 신경을 못 썼었다.
그런데 어제는 좀 달랐다. 친구에게 집중해서 친구와 대화를 하다보니,
전에는 '나는 그런 사소한 거에 관심 없어!'라며 묻지 않았던
'너는 어디 사느냐', '고향이 어디냐', '고등학교는 어디를 다녔느냐'하는 것들이 궁금해졌고
또 물어봤다.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오늘도 여러 사람들이랑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에 깊은 대화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도 얕은 곳에서 점점 깊어지듯이, 대화도, 관계도 얕은 것에서 깊은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모든 과정에는 시작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장대하리라' 라고
말했던 것처럼, 끝이 꼭 장대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모든 시작은 미미하다.
모든 관계는 처음에는 피상적이다가 둘로 나뉘는 것이다.
끝까지 피상적이든가, 점점 깊어지든가.

나는 지금까지는 '피상적인 관계 따위는 필요 없어!'라면서 아예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피상적인 관계가 깊은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오늘도 친구와 함께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등교를 했고
수업 시간에도 친구와 이런 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잠깐 속 얘기도 하고-
이런 건가보다. 친구를 사귄다는 건.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서 이것저것 캐물어서 만들어지는 친구 관계가 아니라
나도 그 친구도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라는 건.
그리고 오늘도 여러 친구들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물론 이 친구들과는 전혀 깊은 관계가 아니고, 그 중에서도 더 친한 친구, 덜 친한 친구가
있지만, 나는 이 친구들이 좋다. 잠깐의 시간을 함께 하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채워주는 친구로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로서 정말 좋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이 중에서도 나와 아주 가까워질 친구가 있는지.

closer  11.04.06 이글의 답글달기

맞아요~~ 매일 보고 깊은 걸 나눌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가끔 안부만 묻는 사람들도 인생에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ㅎㅎ
제 예전의 생각, 그리고 변해가는 생각들과
미니미님 일기가 넘 비슷해서 일기 읽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

리브라  11.04.07 이글의 답글달기

그럼요. 흐흐 사뿐사뿐 가봐요 우리ㅡ 그러다가 진짜를 만날수도있죠.
가을방학- 나비가 앉은 자리 추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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