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   un.
  hit : 2810 , 2011-04-06 14:47 (수)

밥 먹고 나오는데 도서관 앞에 그림 그리는 공간이 마련 되어 있길래 그림을 그렸다.
우리 대학 하면 생각나는 걸 그려보는 것이었다.
같이 밥 먹은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
아주 간만에 꾸미지 않은 나를 조금이나마 보여준 것 같아서 아주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들었다.
옆에 앉아 있던 언니를 너무 놀린 것 아닌가,
그래서 나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아주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하던 걱정이다.
남을 잘 놀리는 성격이었던 탓에 트러블이 생기거나 친구가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재미로 하는 말이었지만
친구들은 기분 나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러지 않으려고 자제를 하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놀리게 된다.
놀리는 게 재미있달까.
아무튼 그래서 한 동안 남을 놀리지 않고 살아왔는데,
요즘 들어서 억압하던 나의 본모습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가 싫어하던 부분까지 풀려 나오고 있다.
예전 같았다면 '다시 들어가!'라면서 쑤셔 넣었겠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해야겠다.
그렇게도 참았는데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은 성격이라면 어쨌든 내 원래 성격이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데리고 살아야지.
그리고 대신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더 키워서 너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는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겠다.

나는 우리 학교가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나무에 온갖 표정을 가진 얼굴들을 매달아 놓았다.
나무 밑에는 하트도 뿅뿅 그려놓고, 나비도 몇 마리 그려 놓고.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면서 고3때 학교 상담실에서 색칠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색칠하는 모습과 색칠한 그림을 보면,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등의 원색과
가라앉은 색을 주로 사용했고, 매우 규칙적이며 꼼꼼하게 색칠을 했었다.
상담 선생님이 그 그림을 가지고 나를 분석해 주셨는데 아주 딱 들어 맞아서 놀랐었다.
뭘 그렇게 감정을 억압하고 있냐고.

하지만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감정들이 많았는 걸요.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증오를 배웠어요.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 걸요.
그런 걸 어떻게 억압하지 않을 수 있나요.
화가 나는 걸 억압하다 보니 다른 것도 억압하게 되더라구요.
감정의 고조 자체를 꺼리게 되었어요.


아무튼 그 증오와 분노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행복에 많이 희석 되었고,
시간도 많이 지났고.
굳이 감정을 억압할 필요가 없으니
제발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좋으면 좋다고 표현도 해보고, 사랑도 해보자.
나는 그러려고 이 학교에 오지 않았는가.
일종의 요양원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학교에 가서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도 괴로웠다. 우울증도 겪었다.
도대체 우리나라 교육은 왜 이모양인가, 하면서.
하지만 여기는 좀 다르다.
여기 사람들도 좀 다르다.
공부하러 왔다기보다는 나를 치료하러 왔다.
정신 병원인 셈이다.
오래 다닐 생각은 아니지만 다니는 동안 나를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 아주 많이 치유 되었고.

우리학교는 좋은 곳♡
우리 학교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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