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  
  hit : 2826 , 2011-11-14 19:52 (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으며 그가 언젠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소설로 쓸 거라고 예감 했다.

정약용 일가의 고향인 양수리 두물머리에 자전거를 멈춘 김훈은 정조말 한 사내의 치욕과 오랜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신유박해때, 정약용은 적극적인 배교와 밀고를 통해 목숨을 구걸한 반면, 형 정약종과 조카사위 황사영은 믿음을 지키고 사지가 찢기는 죽음으로 순교한다.

18년의 긴 유배기간 동안 정약용은 수천개의  서찰, 시, 서간 어디에도 그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훈은 그 긴 침묵의 심연속에 갈무리된 깊은 슬픔을 보았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예상외로, 소설 흑산은 정약용의 슬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고있다.

대신 천주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노비, 어부등 민초들의 처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영웅담이 도달할 수 없었던 역사소설의 한 경지를 훌쩍 뛰어 넘는다.
티아레  11.11.15 이글의 답글달기

정조는 1800년에 죽었고 신유박해는 그 이듬해 1801년.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고 신유사옥은 정조가 죽고 11살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마자 정권을 장악한 노론 벽파들이 남인 시파를 제거하고자 벌인 정치적 공세에서 비롯되었지요.

요즘 역사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 같은 시에도 나타나 있듯이 지난날 민초들의 삶은 정말 처참하기 그지 없었던 것 같아요.

프러시안블루_Opened  11.11.15 이글의 답글달기

ㅎㅎ 맞아요. 티아레님
부실한 기억력에 의존하다 보니......

소설 흑산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대목중 하나는 정순왕후가 백성들에게 내리는 칙서의 언어와 문장들이었습니다.

"백성들아, 이제 나의 마음을 헤아려 고향으로 돌아가 밭을 메고 부모를 공양하라" 투의 유장하지만 말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자의 허망한 언어들요.

제가 다니는 회사 CEO가 현장에 뿌리는,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 지시사항도 떠올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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