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무서운 심리학 (스즈키 고타로)  
  hit : 6975 , 2011-12-29 14:17 (목)
■ 환상의 서브리미널 (subliminal ) 효과 :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위험하고 치명적인 신화

1. 널리 알져진 신화

 1956년 미국 뉴저지 주 포트리의 한 극장에서 윌리엄 홀든이 주연한 영화 <피크닉>이 상영되고 있었다.
    심리학자이자 유능한 광고업자인 제임스 비커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팝콘을 먹어라" "코카콜라를
     마셔라"는 메시지가 담긴 화면을 3,000분의 1초동안 내보냈다. 비커리는 관객들에게 알리지 않고 이
     짧은 메시지를 5초 간격으로 화면에 영사했다.

    6주 동안 진행된 이 실험에서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 기간에 극장을 찾은 고객은 4만,5,699명
    으로 이들은 스크린에 메시지가 뜨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메시지는
    관객을 상대로 제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휴게실 매점의 팝콘 판매액이 이전에 비해 무료 57.5%,
    코카콜라는 18.1%나 증가했다. 비록 관객들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메시지는 광고효과를 톡톡해
    발휘한 셈이다.  (13쪽)


2. 신화의 허구성 

ㅇ 3,000분의 1초 자극 제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비커리는 이 실험에서 어떤 장치를 사용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데, 실험이 이루어진1950년에
    3,000분의 1초 동안만 화면을 영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영화의 원리를 한번 생각해 보자.
    영화는 1초에 24컷이 연속으로 영사되기 때문에 화면이 1초에 24번 바뀐다. (오늘날의 영화는 한 컷
    을 3회 연속 영사하므로 1초에 72회 바뀐다). 

    텔레비젼 브라운관의 경우 주사선의 빔이 한 화면을 그리는데 30분의 1초가 걸린다. 그런데 비커리는
    이 실험에서 서브리미널 화면이 제시된 시간이3,000분의 1초라고 이야기 했다. 영화나 텔레비젼에서
    의 순간 화면에 비해 무려 백배나 짧은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의 길이만이 아니다. 제시 시간에 비례해 그만큼 화면의 광량이도 줄어
    든다. 따라서 제시 시간이 100분의 1이하이면 일반적인 화면의 100분의 1 이하의 광량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를 자극하기는 커녕 망막조차 자극하지 못한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실험이 논문으로 작성되었을 리가 없다. 논문을 작성하려면 어떤 
    화면을 어떻게 제시했는지 자세히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1962년,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커리는 실험 당시 자료가 너무 적어 확신을 갖고 애기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비커리는 "실험 자체가 조작되었다고 고백했어야 했다 (19~21쪽).

ㅇ 20분의 1초로 변경한 대중 실험에서 효과를 증명하지 못했다.

    비커리의 실험이 계기가 되어 서브리미널 광고의 위험성이 제기된 직후, 1958년 1월 비커리는 연방
    의회와 연방통신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실험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까지 그는 이런 실험
    요구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만은 국가의 엄중한 요청이라 응해야만 했다.

    그는 영화 <그레이 고스트>를 보여주며 "팝콘을 먹어라는 메시지"를 20분의 1초 동안 5초 간격으로
    반복해서 제시했다. 결코 3,000분의 1초라는 터무니 없이 짧은 제시 시간이 아니었다. 20분의 1초라면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시간이다. 이 정도의 제시 시간도 그 화면이 영화에 삽입되면 일반적으로 지각
    되지 않으므로 서브리미널한 자극으로 적당하다는 애기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중 팝콘이 먹고 싶어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브리미널 효과를 단단히
    기대했던 의원들은 맥이 빠지고 말았다. 심지어 한 상원의원은 "난 핫도그가 먹고 싶소"라고 말했다
    고 한다 (36쪽)

ㅇ 그외에 비커리의 실험 발표에서 결여된 것들
    - 비커리는 6주동안 실험을 진행해 그 이전과 이후의 팝콘 및 코카콜라의 판매액을 비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험전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했는지 명시되지 않으면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더구나 음료의 경우는 계절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날씨가 더울수록 코카콜라는
      더 많이 팔릴 수 밖에 없다. (17쪽)


ㅇ 일단 잘못된 소문이 들불 퍼지듯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이후 당사자가 아무리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으려고 애를 써도 처음의 상태로 되돌리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ㅇ 특히 '역하지각'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비커리의 조작은 뒷수습이 더욱 어려웠다. 또한
    그의 실험과는 별개로 이른바 서브리미널 효과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다 (22쪽)




■ 늑대 소녀는 없었다 : 아마라와 카마라의 날조된 이야기 

ㅇ 교육학 개론서, 발달심리학 개론서, 우리나라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로,
    선천적 유전자보다 후천적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기 위한 예시로 인용된다.
    (생득설과 환경설)

ㅇ 심지어 "얼굴스트레칭"이라는 책에는 웃는다는 행위의 인간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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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널리 알져진 신화

1920년 10월, 인도 동부 캘거타 인근의 메디나푸르에서 목사로 일하던 조셉 싱은 전도활동을 위해
고다무리 라는 마을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숲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괴물 사냥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늑대와 함께 있는
괴물을 보게 된 싱은 그 괴물이 인간의 아이임을 직감했다. 그는 서둘러 늑대들을 내쫓은 다음 늑대
굴을 수색해 그 안에 있던 두 명의 아이를 찾아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이들은 늑대처럼 네 발로 걸으며 으르릉거렸다. 인간의 말을 하기는
커녕 하나하나에서 인간다운 모습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두 소녀의 나이는
어린 아이가 18개월쯤 돼 보이고, 큰 아이는 여덟살 정도로 추정되었다.

교회에 고아원도 함께 운영하고 있던 싱 목사는 두소녀를 메디니푸르로 함께 데려와 아내와 함게
돌보기 시작했다. 두 아이중 작은 아이에게 아마라, 큰 아이에게 카마라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는
그들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성인이 되었을때 결혼에 지장이 될까 염려해 그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아마라와 카마라는 늑대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네발로 걷는 것은 물론 날고기를 즐겨 먹었으며
음식을 먹을때는 손을 사용하지 않고 접시에 입을 갖다댔던 것이다. 특히 밤이되면 활발히 움직였고
늑대처럼 울어댔다. 또한 낮보다 밤에 사물을 잘 구분했으며 후각도 예민하게 발달했다.

이처럼 동물의 감각을 발휘하던 이들은 특별한 보호아래 성장했지만 안타깝게도 발견후 1년만에
아마라가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때 동생을 잃은 카마라는 두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홀로 남겨진 카마라를 위해 싱목사는 보행훈련을 시도했고, 여러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카마라는
두 발로 걷게 되었다. 하지만 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아무리 훈련을 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26년까지 카마라가 구사할 수 있었던 어휘는 30개에 불과했으며, 살아 있는 동안 습득한 전체
단어가 45개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라가 죽은 다음 싱 부인은 카마라의 몸을 더욱 자주 쓰다듬어 주었고, 스킨십이 늘면서 싱부인과
카마라 사이에 친밀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카마라는
아마라와 달리 1929년까지 생존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싱 목사의 일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는 아마라와 카마라의 양육일기를
자세히 기록했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그 기록의 요약본과 스무장의 사진은 인류학자인 로버트
징의 도움을 받아 1942년에 책으로 출판되었다.

1926년 10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가제트>와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아마라와 카마라에 대한
기사를 실었고, 많은 전문가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대다수는 단순히 구경꾼다운 호기심을
보였지만, 열광적인 관심을 보인 사람도 꽤 많았다. 왜냐하면 그 사례가 발달, 언어, 인간성등 심리학
이나 인류학의 근본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되자 뉴욕심리학회는 1928년에 싱 목사를 강연에 초대하면서 카마라를 동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싱목사는 카마라의 건강 상태를 이유로 그 초대를 거절했고, 카마라는 그
이듬해에 사망했다.



2. 신화의 허구성

ㅇ 싱 목사가 내놓은 사진들의 의심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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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진
여덟살과 생후 18개월로 보이지 않는다

a, b,c,d 사진
네장의 사진은 다른 날짜에 촬영된 것으로 나오는데, 배경과 위치까지도 동일하다.
건물 주위의 수로형태는 물론 오른쪽 구석의 꽃이 핀 식물까지도 전혀 차이가 없다
==> 이들 사진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촬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두아이가 몸을 포게고 자는 사진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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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목사는 a사진은 1920년 12월, b사진은 1921년 13월, c사진은 1923년 6월에 찍은사진이라고 함
그러나, 이들 사진 역시 방안의 배치나 카메라의 각도가 완전히 똑같고, 접시의 위치까지 일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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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진은 1921년 8월, b사진은 1923년 10월에 촬영되었다고 함
두장의 사진은 2년 2개월이라는 시간차이가 있는데 사진속 세명의 아이는 완전히 똑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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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진은 이중노출 테크닉을 이용해 카마라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함
문제는 사진속의 카마라가 달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사진속의 소녀 혹은 소년을 네 발 자세로
고정시킨후 카메라의 위치를 이동시켜 촬영한 것으로 분명한 작위성이 엿보인다.

싱목사는 네발로 달릴때 사람이 따라잡기 힘들만큼 빠르다고 했는데,
과연 저자세로 사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인간의 골격이나 관절, 근육은 직립보행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b사진의 카마라는 나무를 오르고 있는데, 늑대는 나무를 오르지 않는다. 아니 오를 수 없다.



ㅇ  사회학자 윌리엄 오그번이 현지답사 (1951년 ~ 1952년)를 통해 확인한 것들

1. 고아원에 아마라와 카마라로 보이는 여자아이기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싱 목사의 기록과
    달리 '비밀'은 아니었다. 소녀들은 비록 말은 못했지만  두 발로 서서 걸었고, 겉모습은 늑대를 연상
   시키는 점이 전혀 없었고,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는 증언도 있었다.

2.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소녀들을 발견해 구출한 사람은 싱목사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을 구출한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고아원을 경영하던 싱 목사에게 데려 갔다
    는 것이다.

3. 소녀들이 늑대가 아닌 호랑이와 같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4. 싱목사가 소녀들을 발견했다는 고다무리 마을을 찾을 수 없었다
   

3. 저자의 추측
ㅇ 각각 혹은 동시에 숲에 버려져 간신히 생명을 유지한 두 여자아이가 있었다
    (결코 늑대가 키운것이 아니다)

ㅇ 어느 날 마을 사람이 아이들을 발견했는데 (결코 싱목사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해 난감해하던 차에 마침 전도활동을 하던 싱 목사가 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마을 사람은 고아원을 운영하던 싱 목사에게 그 아이들을 맡겼다.

ㅇ 싱목사는 아이들을 메디니푸르로 데려왔고, 두 아이에게 각각 아마라와 카마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늑대소녀 혹은 늑대아이로 불리곤 했다.

ㅇ 1년뒤 아마라는 죽었고, 이후 지방신문에 아이들의 기사가 실렸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ㅇ 그런데 5년후 같은 뉴스가 영국과 미국의 신문에 보도되면서 전문가의 관심을 끌었고, 사실을 묻는
    내용의 편지가 싱 목사에게 도착했다.

ㅇ 이 시기부터 싱목사는 의식적으로 늑대의 습성과 비슷한 행동을 강조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며
    늑대소녀로 보일 만한 사진을 연출해서 찍었다. 그리고 3년후 카마라마저 죽고 말았다.

ㅇ 싱목사는 게젤과 징의 질문 및 요구에 계속 응답했으며, 그 결과 게젤의 늑대소녀 이야기책과 싱 목사
   의 기록을 검증한 징의 책이 출판되었다. 

ㅇ 싱목사는 게젤의 책은 읽었지만 자신이 날조한 기록이 출판되는 것은 확인하지 못한채 예순아홉이던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ㅇ 수많은 자폐아를 진료해온 아동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싱 목사의 기록을 근거로 아마라와 카마라가 중증자폐아 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후지가와 다모츠 역시 자폐나 다른 장애로 키우기 어려운 아이들
    이 벼려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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