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   deux.
  hit : 2195 , 2012-02-12 18:38 (일)


나는 편애를 싫어한다.
편애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뭐랄까
남들보다 조금 더 
편애에 민감하다.

누군가에게
잘 해주는 것 자체를
내가 잘 해주지 않는 사람에 대한 편애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만약 내가 
두 명의 친구와 만났다.
그 중 한 명과 더 친하고
다른 한 명과는 별로 친하지 않다.
그랬을 때
친한 한 명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조금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이
편애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 친한 사람과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더 대화 거리가 많은 것.
같이 지낸 시간이 많으니 그것은 당연한 것인데
어째서 이것을 편애라고, 차별이라고 느끼는 걸까.


-

이런 느낌 때문에 나는 나를 포함해서
둘 이상이 모이면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다.
모두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아무에게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 편이 낫다면서
모두에게 무심하게 군다.
그러다가 나와 상대방,
두 명만 있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신경을 써주고 잘 해준다.


-

왜 그런 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잘 해줄 때
잘 해주지 않는 사람의 감정을 지레짐작하는데
그 때의 느낌은,
아버지가 나에게 화가 나서
나만 따로 떼어놓고 외식을 하러 갔을 때,
나에게 뭔가 토라진 게 있어서
엄마랑 동생에게만 잘 해주고
나에게는 말도 걸지 않고 쌀쌀맞게 굴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꼭 이 느낌을
내가 신경써주지 못하는 그 다른 누군가가
지금 느끼고 있을 것만 같아서,
누군가에게 잘 해주지를 못 하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항하지는 못했다.
그저, 
'잘해주지는 않는 것.'으로 
작디 작은 복수를 했다.
생일 날에도 형식적으로 선물은 주었지만
친구에게처럼 따뜻한 편지를 써주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들어와
힘들어 보여도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아파도, 병원에 입원해도
걱정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해주고 싶었다.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도 끓여주고 싶었고
편지도 써주고 싶었고
걱정의 한 마디나 안부 전화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그런 것을 해주지 않고
어머니한테만 해주면
아버지가 속상할까봐,
뭐라고 할까, 
비참할까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증오했으면서도
그게 걱정되서
엄마에게도 덩달아 잘 해주지 못했다.

두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노력은
아마 이 때의 습관인 것도 같다.

-

하지만 이건 나의 감정이 아니다.
다소 작은 크기의 트라우마.

-

사실 나는 그래서는 안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같게 대한다고
어머니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것은 후회되는 일이다.
사람에게 잘 대해주는 법을 잊어버렸어.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원래부터 애교가 없고 잘 해줄줄 모르는 아이인 거지
아버지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닌 게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나의 그 작고 사소한 복수마저
전혀 소용이 없었던 거야.
아버지는 내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 아니라
내 성격이 그렇게 무뚝뚝하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을 테니까.

이제와서 생각하는 건데
어머니나 동생에게 조금 더 잘해주는 게 

-


편애와 차별 자체는 나쁜 것이 맞다.
그러나 내가 편애와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애와 차별이 아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 친한 사람에게 더 편하게 대하는 것
더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
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여주는만큼의
관심을 보이고 친해지려는 시도를 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그 두 사람을 똑같게 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잘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잘 해줄 수는 없다.
더구나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차별이 아니다.
편애가 아니다.


-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자.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자.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으면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
편하게 대하고 싶으면 편하게 대하고
잘해주고 싶으면 잘해주자.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 마음인데
잘못 형성된 신념에 붙잡혀
표현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싫어하는 사람을 
대놓고 싫어하는 것은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
내 개인적인 편견으로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 것이라면
정말로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이 잘못된 거라면
나에게 그 사람이 잘못 행동한 거라서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거라면
충분히 싫어해도 된다.
누군가를 싫어하지도 못할 만큼
내가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좋은 사람 축에 속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물을 공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그러니까 내가 싫어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


잘 해주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죄책감 갖지 말고.



보라  12.02.13 이글의 답글달기

하나씨! 제생각에는요 ,느끼신대로 편애라는 감정을 느끼는것에 대해서 죄책감갖지않는 것이 좋을것같아요~ 아무리 좋은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고, 아무리 나쁜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이 싫어하진 않듯. 어떤 사람이든지 본인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거잖아요.. 하나씨가 잘해주지 못한 사람은 반면에, 다른사람에겐 좋은 대접을 받고 지낼 수도 있고, 좋아서 잘해준 사람은 반면에, 다른사람에겐 미움받을 수도 있는거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하고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나씨의 행동이 특정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수도 있어요~ 음. 물론 제생각엔 어머니와 같은 특별한 사람에겐 나역시 어머니의 특별한 사람으로서 그 기대에 부응할 필요는 있을것같아요^^ 반면. 그냥 일반적 관계라면 그렇게 마음을 쓰시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매번 일기를 보기만 했는데 하나씨의 세심함이 스스로에게 아픔이 되는 듯한 글을 몇번 보아서 스스로를 좀더 위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댓글남겨요^^ 항상 힘내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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