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존수단   deux.
  hit : 2286 , 2012-02-12 20:13 (일)


이기.
그리고 
회피.


이 두 가지가 내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생존전략이다.
뭐, 인간인 이상 '생존' 자체는 어느 정도 보장 받으니
생존전략이라기 보다는 생활 전략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아무튼
내가 스스로를 지키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이기와 회피.

내 행복은
내 이(利)는 내가 지키고 내가 얻는다.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 모두를 위하는 희생은 할 수 있지만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은
할 생각 없다.

십 수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건 없었건
내가 아버지의 성폭행을 참아내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핑계였는지,
그것마저도 회피였는 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을 때 마다,
동생이 생각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 
가정을 잃을 동생과
남편을 잃을 엄마가 불쌍해서.
그래서 그냥
나 혼자 참으면 된다고,
나만 조금 불행하면
세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참아왔다.

하지만
그런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의 행복은 날로 곰삭아만 갔다.
나는 나날이 불행해지는데
다른 가족들은 그것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나의 침묵으로 유지되는 그 아슬아슬한 평온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렸다.

나는 이제 그런 것에는 질렸다.
숨죽인 희생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

그래서 자꾸만 이기적이 된다.
악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것은 아닌데,
뭐랄까 동생한테는 양보를 잘 안하려고 하고
엄마한테는 배려를 잘 안 하려고 한다.
새로 이사를 가서 
방을 정할 때도 
내가 무조건 좋은 방을 쓴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내가 더 가벼운 것을 들고
뭔가를 사먹을 때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 것은 내가 얻는 것이다.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인 거지,
나는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얻으니까 얻을 수 있는 거야.
내가 입 다물고 있는 사람의 이(利)까지 챙겨 줄 필요는 없어,
라고.

-

배려,
좋은 것이다.
소심해서 자기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을
먼저 배려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럴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아직은 스스로 피해의식이 더 크다.
하지만 조금 더 피해의식을 갖고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기적이고 철 없다 생각해도 괜찮다.
아직은 조금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
지금 다른 사람들만 주구장창 생각했다가는
나는 학교도 못 다니고
꿈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

부모가 이혼했다고
엄마 혼자 돈을 벌게 되었다고
상황이 조금 좋지 않게 되었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장 일이나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하는 것은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 아니다.

조그마한 위기가 찾아왔지만
아직 절망은 아니다.
할머니 덕분에 넓은 아파트에 살게 되어서
집 걱정은 덜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 동생 양육비는 준다고 했다.
엄마도 몸은 건강해서 아직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만 나보고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내가 학교 다니는 것에 대해서 눈치를 준다.
물론 내가 지금 학교를 그만두고
당장 공장에 나가거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엄마는 조금 편할 것이다.
물론 지금 엄마가 엄살을 부린다거나
우리 집이 전혀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물 한 살의 꿈이 있는 여자가
그것을 송두리째 포기할 만큼 절망적이지는 않다는 것.
다른 가족들 아주 조금 편하자고
내 꿈을 포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

이것을 스스로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조금은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다른 사람을 위했다가는
엄마가 집에서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동생 용돈을 주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로
이제 갓 세상에 발을 내디딘 내가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나의 행복은
나의 꿈은
내가 지키는 것이다.

이 단단한 껍데기가
아직은 내게 필요하다.
억지웃음  12.02.12 이글의 답글달기

마음을 삭히고, 꾹꾹 눌러담는 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움이 따를지.. 아주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물론 하나님이 겪으신 고통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요.
그러한 희생,양보, 억누름 때문에 하나 님의 상처가 더 번졌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긴 자기보호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거죠... 단단한 마음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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