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의 사람   deux.
  hit : 2310 , 2012-02-11 17:14 (토)


나는 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야기를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돌아오는 반응들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중학생 때 까지는 그런 일에 몰두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무슨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로 소설을 '끊었다.'

그러고 난 후에도
무슨 물건이나
상황을 보면 소설의 소재로 써야겠다,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이제는 내 마음대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한 줄도 제대로 써지지가 않았다.


소설은 왜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참 힘든데,
내가 만들어 낸 인물의 감정이 내 마음 속으로
그대로 흘러들어와 
정말 정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일인데
내가 그걸 왜 써야 하지?
단지 '나는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소설을 쓸 수 있으니까 써야 하는 건가?
그림이나 마찬가지인 건가?
소설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소설을 왜 쓰는가?
사람들은 소설을 왜 읽는가?

이런저런 본질적인 고민들로 
문장을 써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러다가 얼마 전에
중학생 시절 같은 커뮤니티에서 소설을 쓰던 친구를
실제로 만났다.
7년 간 온라인이나 통신 매체로 친구 사이를 유지해 오던 녀석인데,
온라인 친구가 이렇게나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아무래도 만나야겠다 싶어서
먼 지방까지 직접 가서 만나고 왔다.

만나서 릴레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가 생각해 놓은 소설 소재에 대한 잡담도 나누었다.
친구가 나의 소설을 보고 싶다고,
다시 쓰면 안 되냐고,
보챘다.
릴레이 소설을 같이 쓰자고.

깨달았다.
소설은,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쓰는 것이다.

-


쓰고 싶은 소설이 생겼다.
엄마의 시점에서
딸인 나를 바라보는 소설.
나는 엄마와 건강하게 소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하나 있다.
생각하는 방법도
사는 방법도 달라서
의견 충돌이 잦은데
그 때마다 나는 엄마를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는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 들을 거야.' 
라면서 설명을 피하고 입을 다물거나 성질을 낸다.

나는 그 날이 그날 같게 사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을 하면서
살 생각이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돈을 조금 적게 벌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날마다 의미 있게 살고 싶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어려운 시절을 살아서 그런지,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 지,
그런 생각은 없고 하루 하루, 그날 그날 한 치 앞만을 보고 산다.

내가 해외 교류 활동을 간다고 하면 
쓸데 없이 그런 것은 왜 가냐며,
네가 봉사할 처지냐며.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하면
취업과 상관도 없는 학교는 뭐하러 다니냐며,
내가 학교에서 임원을 맡는다고 하면
그런 건 왜 하냐며-

'교육'
이라든지 
'배움'
이라든지
'경험'
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다.

나는 정말 정말 답답하다.

-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만 벌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학교 활동도 조금씩 하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데
휴학을 했으면서 그런 건 왜 하냐며
돈이나 벌라는 투로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매번 짜증만 낸다.

엄마는 도대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
뭐랄까
솔직히 아직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다.
소설을 쓰면서 조금 이해가 되면
그 때 용기를 내서 직접 물어봐야겠다.


-

아무튼
제목은 뭘로 할까.
'강 건너의 사람'
으로 할까나.
   분노 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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