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것을 느끼지 말고, 느끼자. │ deux. | |||
|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느끼는 것을 느끼지 말고, 느끼자. . . 티아레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폴론적 자아보다 디오니소스적 자아를 존중하라는 것.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짜증이 나면 그것을 억압하기 위해 짜증이 나는 나의 감정상태를 억압하거나 파악하려 하지 말고 그냥 짜증을 내라는 것. 내 행동 내 말투 내 기분 지금 내 모습이 어떤 지 점검하고 체크하려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순간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순간 속에서. . . 오늘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태워다 주었다. 아직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사이인데 고맙게도 태워다 준다고 했다. 남자 둘과 나. 자의식이 발동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로서는. 나의 행동거지와 말투 시선 혼자 멍하니 있을 때의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통제했다. 이 행동은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어떻게 하면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요즘 이런 것에 관심이 생겼다.) 이 사람은 이런 여잘 좋아할까 저 사람은 어떤 여잘 좋아할까 오늘의 컨셉은 어떻게 잡을까. 도도하게 갈까 귀엽게 갈까 발랄하게 갈까 무섭게 갈까. 오늘은 착하게 갔다. 그런데 착하게 행동하고 나니까 털털하고 나쁜 여자를 좋아할 것 같아 걱정이다. 웃긴 일이다. 털털하고 나쁘게 행동하고 나면 귀여운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될 것이 분명하다. . .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나,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요컨데 내가 그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지겹다. 호수 바깥에서 돌을 던지면서 그 물결파의 틈 사이로 호수 안 쪽을 들여다보지 말고 부디 호수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기를.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나는 거북이처럼 그곳을 향해 기어가야겠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