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할게   deux.
  hit : 2798 , 2012-11-11 20:02 (일)



그동안 고마웠어.
21년 동안 나를 지켜주고
나를 키워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에 무너져버렸을 거야.
네가 나를 지탱해주고
맑고 예쁜 모습으로 남을 수 있게 지켜주었어.
너에게 정말 감사해.

이제 네가 나에게 남겨준 나의 모습으로
내 인생을 살아갈게.
네가 그 어둠 속에서 지켜준 나의 모습으로
밝고 힘차고 행복하게 살아갈게.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세상은 나에게 안전한 곳이 되었으니까.

더 이상 나를 공격하는 아버지가 없어.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아도 돼.
사랑하는 엄마, 동생, 할머니와 
아무도 싸우지 않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를 증오하지 않아도 되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지 않아도 되고
아버지가 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할 것이라는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맞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고
아버지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리지 않아도 되.
아버지는 이제 엄마도, 나도, 동생도
헤칠 수가 없어.
그는 이제 완전히 우리와는 남이 되었어.
더이상 우리 집의 권위자가 아니야.


나는 이제
안전해.
나는 이제 완전히 안전해.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아.



.
.


고마워.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 험난한 상황 속에서
나를 지켜줘서 정말로 고마워.

지금도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최선을 다해서 나를 지키려고 해주는 네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야.




.
.


하지만
이제 괜찮아.
네가 그동안 나를 잘 보살펴준 덕분에
나는 겪은 일 치고는 깊게 상처받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어.
네가 내게 준 나의 모습으로 
나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도는 충분할 정도로
나는 예쁘고 멋진 아이로 자랐단다.

그러니 이제 그만 쉬어도 돼.
이제 그만 너의 자리로 돌아가서
가만히 앉아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를 지켜봐주렴.
그렇게 나는 너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테니.




그러니 이제는 쉬어도 된단다.
내가 심리 치료를 받으며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했던 기억으로
괴로워하더라도 
너는 그저 그 자리에 있어줘.
내가 할게.
내가 아파할게.
너는 나를 고통으로부터 지켜냈지만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나는 이제 겪을 필요가 있단다.
내가 고통을 겪어내고 그로부터 열매를 얻을 수 있을만큼
강해지고 성숙해질 때까지 
내가 그 고통을 잠시 피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만들어준 너는 참 현명해.
분명히 어린 나는 그 고통을 겪어낼 수 없었을 거야.
감당할 수 없어 미쳐버렸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덕분에 나는 충분히 성숙한 상태에서
고통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단다.
참 고마워.

이제 내가 겪을게.
이제 내가 견딜게.
내가 아파할게.
나를 지켜봐줄래.



내가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할 때도
너는 나를 도우려고 참 애를 써주었어.
나를 고통으로부터 피신시키고
상황을 분석하고
나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지.
하지만 남자친구와의 문제는
아버지와의 문제처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란다.
나는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하고
나 정도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문제란다.
그러니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너는 그저 나를 지켜봐줘.

세상에 태어나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모진 미움과
그릇된 사랑을 받아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남자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안고 있는 내가
한 남자를 만나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그런 감동적인 과정을
그저 지그시 바라봐주렴.

나는 내가 대견해.
너도 내가 대견하겠지.
네 덕분이란다.






그동안 고마웠어,
또 다른 나야.
정말 정말 수고했어.
너는 나의 은인이야.
사랑한다.

티아레  12.11.12 이글의 답글달기

감동적인 글.
읽으며 눈물 흘렸어요.

댓글 하나를 쪽지로 돌렸어요.

구름속가로등  12.11.12 이글의 답글달기

읽는내내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12/11/12
   언젠가는 12/11/11
   나의 삶이다. 12/11/11
-  이제 내가 할게
   짐을 내려 놓으려 합니다. 12/11/08
   이게 웬 광고ㅡㅡ? 12/11/08
   또 다른 눈. [2] 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