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deux.
  hit : 2260 , 2012-11-11 21:35 (일)


오늘은
오빠에게 서운한 것을 이야기했다.
사실 그동안 
자주 만나주지 않는 오빠에게 서운했었다.
2주에 한 번 꼴로 만나는데
그 마저도 자꾸만 무슨 일이 생겨서
틀어지곤 했다. 
그리고 오빠는 나를 만나는 게 최우선이 아니라
항상 다른 일과 나를 만나는 일을
똑같이 여기는 것 같아서
너무 서운했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에
또 나한테 그러는 것이었다.
'아, 큰일 났다....이번 주에 아빠 생신이래..'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또 못 만난다고? 

오빠는 조금 일찍 만나서 
조금 일찍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미 그동안 쌓인 것이 터진 뒤였다.

치과에서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 병간호
외할머니 생신 등등
참 나를 만나는 날이면 무슨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가족 행사라서 뭐라고
화도 못내고 늘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겉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게 터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루 동안 연락도 잘 하지 않고
오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오빠도 연락을 하지 않는 나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화가 났었다.



오늘 만나서 얘기를 했다.
나는 오빠에게 얘기했다.
또 아빠 생신이라고 해서 서운했다고.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알겠는데
그동안 쌓인 게 터져버렸다고.
왜 맨날 나를 만날 날이면 무슨 일이 생기는 지 모르겠다고.
그게 짜증났다고.
오빠 손을 잡고 오빠에게 얘기했다.
오빠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도 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주었다.
나는 표현하지 않고 연락을 끊는 방식으로 표현한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누군가에게 
내 서운함을 표현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참으로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
.







'꺼내기 더 쉬운 얘기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하다보면
나중에는 더 깊은 얘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마음을 열고 한 얘기를 상대가 경청하고 수용해주는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면 상대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커지고
그러면 깊은 얘기도 어렵지 않게 나누게 되겠지요.'






맞는 말씀이다.
수용되는 경험,
그리고 신뢰.






앞으로 내 마음 속 깊은 이야기들은
이 신뢰를 더 쌓은 뒤에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경험과 
두 번째 경험에 관해서 쌓인 상처는
성 문제를 얘기할 때가 되면 
할 수 있게 되겠지.
갑자기 뜬금 없이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아직은 성 문제에 대해서
둘이 터 놓고 얘기한 적은 없으니까.
오빠가 요즘은 하고 싶다는 얘기도 잘 안 하고 그러긴 하는데
속으로는 조심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 오빠가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
그러면 그 때 가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될 것 같다.




.
.


그래 
때가 되면
그리고 신뢰가 쌓이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만 하면 된다.
모든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없는 얘기니까 
못하는 건데
못 한다고 
나는 오빠와 대화가 안 통하나봐,
하는 건 어리석은 것 같다.

할 수 있는 얘기는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지금은
할 수 있는 얘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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