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 deux. | |||
|
오늘은 오빠에게 서운한 것을 이야기했다. 사실 그동안 자주 만나주지 않는 오빠에게 서운했었다. 2주에 한 번 꼴로 만나는데 그 마저도 자꾸만 무슨 일이 생겨서 틀어지곤 했다. 그리고 오빠는 나를 만나는 게 최우선이 아니라 항상 다른 일과 나를 만나는 일을 똑같이 여기는 것 같아서 너무 서운했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에 또 나한테 그러는 것이었다. '아, 큰일 났다....이번 주에 아빠 생신이래..'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또 못 만난다고? 오빠는 조금 일찍 만나서 조금 일찍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미 그동안 쌓인 것이 터진 뒤였다. 치과에서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 병간호 외할머니 생신 등등 참 나를 만나는 날이면 무슨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가족 행사라서 뭐라고 화도 못내고 늘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겉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게 터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루 동안 연락도 잘 하지 않고 오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오빠도 연락을 하지 않는 나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화가 났었다. 오늘 만나서 얘기를 했다. 나는 오빠에게 얘기했다. 또 아빠 생신이라고 해서 서운했다고.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알겠는데 그동안 쌓인 게 터져버렸다고. 왜 맨날 나를 만날 날이면 무슨 일이 생기는 지 모르겠다고. 그게 짜증났다고. 오빠 손을 잡고 오빠에게 얘기했다. 오빠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도 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주었다. 나는 표현하지 않고 연락을 끊는 방식으로 표현한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누군가에게 내 서운함을 표현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참으로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 . '꺼내기 더 쉬운 얘기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하다보면 나중에는 더 깊은 얘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마음을 열고 한 얘기를 상대가 경청하고 수용해주는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면 상대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커지고 그러면 깊은 얘기도 어렵지 않게 나누게 되겠지요.' 맞는 말씀이다. 수용되는 경험, 그리고 신뢰. 앞으로 내 마음 속 깊은 이야기들은 이 신뢰를 더 쌓은 뒤에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경험과 두 번째 경험에 관해서 쌓인 상처는 성 문제를 얘기할 때가 되면 할 수 있게 되겠지. 갑자기 뜬금 없이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아직은 성 문제에 대해서 둘이 터 놓고 얘기한 적은 없으니까. 오빠가 요즘은 하고 싶다는 얘기도 잘 안 하고 그러긴 하는데 속으로는 조심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 오빠가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 그러면 그 때 가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될 것 같다. . . 그래 때가 되면 그리고 신뢰가 쌓이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만 하면 된다. 모든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없는 얘기니까 못하는 건데 못 한다고 나는 오빠와 대화가 안 통하나봐, 하는 건 어리석은 것 같다. 할 수 있는 얘기는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지금은 할 수 있는 얘기를 하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