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버전
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상식   치유일지
조회: 2408 , 2013-03-01 18:22


그냥, 
딱 하나다.
상식적인 상황에서 살고 싶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도망치지 않아도 되고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되도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부정한다.
엄마도 부정한다.
그 자식도 부정한다.

있었던 일 그대로의 무게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지를 않는다.

이제와서 
라는 반응.
뻔뻔하고도 뻔뻔한.
억장이 무너진다.




.
.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저렇게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을까.
반문하고 소리쳐보지만
답은 없다.
나 혼자 분노할 뿐이다.

정말 흠씬 두들겨 패서
내 발 밑에서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고 싶다.
'다 인정해. 네 말이 맞아, 내가 그랬어. 네 말이 다 맞아'
라는 말을 듣고 싶다.

'너도 즐겼잖아. 이제 와서 왜 그러냐. 인생 망치지 말고 살아.'
라는 말은 나를 너무너무 화나게 만든다.
왜 화가 나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화가 난다.
뭐가 잘못 됐는지 나도 설명할 수 없지만
화가 난다.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이해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상식 밖의 일,
평범함 밖의 일이 늘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러면 나는 털어놓을 사람도 없이
늘 혼자의 세계에서
괴로워한다.

제발, 
가치가 뒤집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
.


친족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의 기사를 보면
'수 차례' 성폭행한 죄, 
라는 부분을 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어떻게 수 차례밖에 안 될 수가 있지?'

처음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듯 하다.
수 차례밖에 안 될 리는 없다.
특히 친족 성폭력의 경우에는.
대상이 자기 딸인데다가
반항을 못하는 상황,
그 상황에서 가해자는 상습적이고
일상적으로 성폭행을 저지게 된다.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자기 앞에 있는 자신의 딸이 어떻게 병 들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입증을 못 하는 건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증거가 없으니,
있었던 일 모두가 인정되지는 않고
가해자가 인정하거나 정황상 부인할 수 없는 
몇 차례의 성폭행만 인정되고
거기에만 형이 부여되나 보다.

나 또한 입증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엄마가 목격한 것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나의 증언과
그 자식의 자백에 의해서만 입증이 가능할 터.
그러나 그 자식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임은
불 보듯 훤하다.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을 이야기해야겠지.
분명히 내가 겪었고
내 삶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인정받을 수 없는 그 좌절을 겪어야 하겠지.

억울함에 몸서리치겠지.
그 자식의 뻔뻔함에 다시 한 번 오열하겠지.





.
.



아무리 생각해도 개새끼다.
온전히 감당하기도 힘든 분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억을 불러들이려고 노력하는데
자꾸만 억눌러 버린다.
너무나 커서.
너무나 괴로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냥 학교고 뭐고 다 그만두고
어디 절에나 들어가버리고 싶다.

도저히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 분노와 
그 때의 감정, 느낌들을 불러들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




어디 표출할 데라도 있으면 
감정을 불러올 수 있을 텐데.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게 무서워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저 3월 말에 있다는
작은 말하기 대회를 기다릴 뿐이다.
성폭력 위기센터에서 진행하는 집단 상담도 얼른
다시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저 그것 뿐이다.
혼자서는 못할 것 같다.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