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모바일로 글을 읽고
컴퓨터로 다시 들어오면
글이나 댓글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댓글이나 답글을 달아야지,
하고 다시 들어와서 없으면
뭔가 굉장히 허전하고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sunset님께.
댓글 잘 읽었습니다.
'나한테 그 행동이 필요했다'
정말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어떤 반응을 보이든
어쨌든 나는 그 일을 해야만 속이 시원한 거죠.
제가 전 남자친구하고 헤어질 때
그런 행동을 하나 했거든요.
저는 전 남자친구하고 편하게 대화를 할 수가 없었어요.
언제나 조금 걷도는 느낌?
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기가 불편해서 삼키기만 했죠.
그런데
헤어지기로 결심한 날
그러니까
헤어지기 전 날
서점에 갔는데
어떤 책을 보니까
문득 오빠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뭔가 기분이 묘해졌어요.
그러고보니 나,
매일 책을 읽고
책을 사면서
한 번도 오빠에게 책을 선물한 적은 없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그 책을 샀어요.
오빠에게 주려고.
헤어지는 마당에.
웃기죠?
고민도 했어요.
아 이걸 주는 게 맞는 건가.
웃긴 거 아닌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묘하게 그런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거 안 주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다,
하는 그런 기분.
그래서 그 책을 사고
집에 와서 편지를 썼어요.
웃기는 일이죠.
상대방 입장에서는 더 웃길 노릇이죠.
헤어지는 마당에 편지라니,
이 여자애 지금 뭐하는 건가.
하지만 저는 아랑곳 않고 썼어요.
이번 한 번만 내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주자.
그리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그 편지에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썼어요.
오빠가 성격이 많이 어른스러웠어요.
어딜 가나 어른스럽고 듬직하게 행동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힘들어하는 걸
잘 못더라구요.
늘 어서 힘내라고 하고,
울면 울지 말라고 하고.
저는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오빠가 밉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아, 결국 오빠가 자기 자신에게 늘 하는 말이겠구나 싶어서
조금 안쓰럽기도 했어요.
장남이고, 남자이고 하니
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나봐요.
그래서 그 경직된 어깨를 조금 풀어주고 싶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못 하고 헤어지는 게 너무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가끔은 울어도 좋다고.
우는 게 약한 건 아니라고.
힘들어도 된다고.
힘든 게 무조건 나약한 것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혼자 버티고 끙끙대지 말고
조금 내려놓는 게 어떻겠냐고.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어쨌든 나는 저 말을 꼭 해주고 싶었고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내뱉어버린 거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했어요.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오빠는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미 선택한 진로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죠.
사실 제 눈엔 선택한 진로를 그닥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냥 그것으로 길을 정했고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밟아가는 것처럼 보였을 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정말 잘 어울렸어요.
그 일을 이야기할 때면 좋아하는 것이 정말 느껴졌구요.
늘 좋아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다가
나와는 달리 이미 취업이 목전으로 다가온 오빠에게
그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웠죠.
그래서 못했는데,
그 말을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말도 했어요.
꼭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면서
다른 길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었으면 좋겠다고.
이것저것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잘 어울린다고.
그렇게 하고
전해주고 나니까
속이 후련한게
제 안에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더라구요.
물론 주기도 멋쩍었고
민망했지만
갈수록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갖 후회들로 괴로운데
그거까지 안 줬으면 그것만큼 괴로웠을 거니까요.
언젠가 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