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조급한 경향이 있다.
어서어서 변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다그치곤 한다.
요즘은 참 마음이 편하고
새로운 내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변화시키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는데
잘 되는 것도 있지만
잘 안 되는 것도 있다.
그럴 때면
왜 안 돼지?
하면서 살짝 부아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잘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태로 발전한 지도 불과 며칠이 안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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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불과 3일 전까지만 해도
'성폭행'과 관련된 괴로움에
너무너무 괴로웠는데,
그 괴로움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고 나니까
이제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열심히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 중인데
역시 이 곳도 문제 투성이여서
얼른얼른 해야지,
하는데 잘 안 되서 끙끙대고 있는 중이다.
웃긴 것 같다.
성폭행에 대한 생각을 안 하게 된 게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편하게 숨을 쉬게 된 게
불과 엊그저께.
딱 3일 됐다.
12일에 풀려났으니.
그런데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 마냥
전혀 휴식도 주지 않고
다시 다른 문제를 찾아내서
나는 문제 투성이라고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천천히 가자 하나야.
정말 빨라.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상담 선생님도 그러셨잖아.
한결 빨라졌다고.
이렇게 만들기 쉽지 않다고.
참 잘 한다고.
그런데 뭐가 그렇게 조급하니.
쉬엄쉬엄 가자.
갈 길이 멀어 보일 때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라는 말이 있어.
뒤를 돌아봐.
내가 했던 노력들.
일궈낸 것들.
앞으로 해야 할 일들만 죽 늘어놓고
한숨 쉬면서
자신을 문제 투성이로 만들지 말구.
이뤄온 것들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해보자.
음
중학생 이후로 변한 것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러면 내가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발전해왔는 지 알 수 있을 거야.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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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트라우마에 대한 기사를 봤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평생 불면증이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대인관계나 사회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많은 경우 자살을 시도한다는 기사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불면증에 걸린 적은 없다.
며칠씩 잠을 못 자서 뜬 눈으로 밤을 새기는 하지만
그건 가끔씩 그러는 거지 '증'이라고 할 것까지는 못 된다.
사회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도 않는다.
물론 대인 관계는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하지만
문제랄 것까지는 없다.
친구도 많고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고.
다만 내가 마음을 잘 못 열어서
스스로가 외로운 부분은 있지만.
학교도 잘 다니고
학업 성취도 뛰어나고
내 길 잘 찾아서 여러 가지 경험 하면서 살고 있다.
어딜 가나 환영을 받고
인기도 많고.
관계에 있어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고
이질감이 느껴져서 외로운 것,
친밀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등의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 부적응'이라고 할 만큼 심각한 것도 아니다.
자살을 시도한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물론 가끔 삶의 의욕이 떨어지기는 한다.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시도한 적은 있지만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은 없다.
초등학생 때
집에서 쫓겨났을 때
창문 밑에 의자가 있길래
밟고 올라서서
'죽어버려야지'
했지만 무서워서 뛰어내리지는 못했다.
고등학생 때
옥상 난간을 타고 이리 저리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떨어져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수면제를 구할 수 있을 지
궁리를 해보기도 했고
커터칼로 살짝 손목에 긋는 시늉을 해보기도 했고.
하지만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한 번도.
생각보다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죽기가 억울해서.
그래, 나는 죽기가 억울했다.
내가 왜 그 개새끼 때문에 죽어야 돼.
그 새끼가 죽어야지.
나는 살거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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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나약하다거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평생'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시선.
판단.
편견.
당연히 성폭행을 당한 후에는
그런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그것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성폭행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와 그 후유증을 딛고 마침내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나는 그런 시선을 원한다.
오래도록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시선이 느껴져서
불쾌했었다.
상담소에서는 가끔
재판에서
'동정심'을 이끌어내야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곤 했었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그 새끼에게 화가 나기는 한다.
열받고 증오스럽고 혐오스럽고.
하지만 '비참'하지는 않다.
나는 지금 스스로의 힘으로 잘 극복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런데 나 스스로르 불쌍한 아이로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 때 당시에는 그냥 싫은 느낌만 있어서
'왜 싫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제서야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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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주체적으로 나의 경험에 대하여 재해석 할 수 있고
내 경험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피해 상처를 치유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이것은 내 경험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가해자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게 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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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며
주체적이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 안에 쌓인 감정의 응어리들을 풀어줄 필요가 있고
그것은 나의 정신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살기 위해 많은 감정들을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 감정들을 자유롭게 풀어줄 것이다.
울고 싶지 않으면 울지 않아도 된다.
불쌍하고 위축된 모습으로 내 경험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된다.
경험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성폭행이 내 삶을 결정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이고
내가 나의 성폭행 '경험'에 대한 기억을 결정 짓는다.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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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했던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새끼가 저지른 더러운 짓을 밝히는 것이다.
그 때의 경험을 다시 겪는 게 아니라
나의 시각에서 나의 과거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두려워할 것 없다.
아무튼 수고했다.
나날이 성장해줘서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