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쯤에,
3주 정도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쪽에서 먼저 나에게 관심을 보여왔고
매우 적극적으로 대쉬를 해왔다.
몇 번의 대화를 가진 뒤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던 날,
갑작스러운 고백을 받았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좋다고 말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참 편했고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같이 이야기를 하고나면
긴장이 풀리고
온 몸이 노곤해지는 것이
참 좋았다.
이렇게까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2주 동안은 아주 좋았다.
바빠서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를 만나러
그 쪽에서 자주 와주었고
내가 토라졌을 때는
꽃을 사들고 갑자기 나타나
나를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결코 작지 않은 나보다
훨씬 커서
나를 번쩍번쩍 들어주는 것도 좋았고
헤어지기 전에 한 팔로 꼭 안아주는 것도
참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전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연락을 바라지도 않아서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앞으로의 연애가 기대된다며
서로 설레는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왔을 때,
갑자기 그 쪽의 태도가 변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고
이유를 알아내려 애를 썼다.
내가 서운하게 한 것이 있냐고 물어도 보고
내가 잘못했다고 짐작되는 행동을 고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변화는 없었고
나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에
그 쪽에서 연락을 안 하기 시작했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해도
대답은 짧았다.
내가 화를 내도
내 감정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돌아오질 않았다.
그렇게 외로운 일주일을 보냈을 때,
그 쪽의 전 여자친구가
그 쪽에게 연락을 했고
나에게 태도가 변했던 그 일주일 동안
두 번이나 그 전 여자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 여자친구는 물론이거니와
그 동생과 엄마와 함께
밥을 먹고 사진도 찍었다는 사실을.
.
.
이 사실을 나는
나와 그 쪽을 이어준 나의 친구에게 전해들었다.
내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그 쪽은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
.
그렇게 답답한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마음을 이미 정리한 상태로
그 쪽을 만나러 나갔다.
그 쪽 역시 마음을 정리한 듯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라고 했고
나에 대한 감정과
전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을 물었다.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전 여자친구가 계속 신경이 쓰이고
나에 대한 감정이 변했다는 답을 들은 나는
얕은 웃음을 한 번 내뱉은 뒤에
그러면 그만하자, 고 이야기했다.
그 쪽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음료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이제 가자,
고 이야기했고
안녕,
하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
.
참 이상했던 시간들이었다.
연애,
까지 되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믿고 나의 많은 이야기를 했던 터라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어이가 없었지만
딱히 슬프지는 않았던 걸 보면
나는 역시나
나를 좋아했던 그 사람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도 아쉬울 것은 없다,는 식의.
.
.
그리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다음에 누구가를 만날 때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남자와 만나야겠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서 사귀게 되면
역으로 내가 끌려다니게 된다.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내가 받고 나서
어쩔 줄을 모르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받은 만큼 주고 싶은데 그만큼 좋아하지는 않고
상대방은 계속해서 나한테 마음을 보내오고
그러면 나는 부담감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
그러니까
다음에는
많이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어야겠다.
그리고
신중히,
또 신중히.
특히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았을 때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아무튼
헤어지자마자 정신없이 필리핀을 갔다와서
덕분에 이제는 까마득해진
두 번째 연애를 이렇게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