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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月
 주말동안.   지난 이야기
조회: 2417 , 2015-03-23 22:46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결혼하겠다고 알렸다.
 3-4년쯤 만난 아가씨와.
 
 결혼, 그런거 왜 하냐는 반문에 엄마는 내 등짝을 때렸다.
 
 오랜시간을 만났기때문에, 자주 집에도 놀러오고-
 가족 여행 가는데도 함께 하곤해서 낯설지 않은데,
 기어코, 며느리로서 인사를 드리고 싶다해서 근사한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했단다.
 결혼을 허락해주세요, 라던가?

 둘이 마음 먹었으니, 최대한 빨리 하고 싶다는데
 엄마와 아빠는 내년 봄쯤이나 좀 더 있다가 하라는 의견을 내놓으셨다.
 뭐 어찌될지 잘 모르겠지만.
 동지만 안 지나면 된다며, 12월? 이랬다가 1월이랬다가.
 
 할머니와 영감님이 편찮으시다고,
 아빠가 약을 들고 시골에 내려간다고 같이 가자하셨다.
 구정때도 찾아뵙지 못했다고,
 손녀딸 보고 싶어 하신다고.
 
 복분자음료와 딸기 한가득 사들고 대문을 열고
 할머니- 하고 불렀더니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는데 누구냐 묻는다.
 허허.. 나잖아, 진아. 할머니 손녀.

 그제야 다시 보곤, 아~ 우리 잘난이 왔다고. (어렸을때부터 할머니는 나를 잘난이라고 불렀...)
 살이 왜이렇게 빠졌냐고, 못 알아봤다고
 나를 부둥켜 안고서,
 이놈의 가시나, 할머니 보고싶지도 않았냐고,
 구정때도 안 오고. 나는 니가 보고 싶었는데. 내가 너를 어렸을때 얼마나 예뻐했는데.
 나이 드니 너무너무 서럽다며 나를 안고 우신다.
 
 또 시작한다며, 영감님은 할머니에게 면박을 주고,
 할머니는 나이 드니 별게 다 서러워진다며 다시 나를 안고 눈물을 닦는다.
 
 울긴 왜 울어. 무릎은 괜찮아? 하며 할머니 손을 매만진다.
 
 관절염으로 걷지도 못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할아버지 진지도 못 챙긴다며,
 뒤에서 영감님은 당신 손으로 밥 해먹는데 힘들어죽겠다며 성화시다.
 
 노인네 성질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저 버럭하는 성질머리를 아빠가 닮고, 그런 아빠를 내가 닮았단 말이지......
 
 아빠는 몸에 좋다는 약, 관절에 좋은 약을 챙겨다 어떻게 먹는지 설명하고
 나는 딸기를 씻어서 엄마와 도란도란, 할머니와 함께 옛날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세상은 여자의 지위가 많이 높아졌다며,
 큰소리 치고 살아야 된다며 할머니가,
 남자가 말 안들으면 때려야한다며, 말씀하시니
 엄마가 웃으며, 어머님 그럼 진아아빠 좀 때려도 되요? 반문한다.
 내가 킥킥킥 웃으며, 맞아 아빠 좀 맞아야겠는데? 하니
 할머니가 반색한다.
 우리아들은 때리면 안되지...
 뭐야, 할머니 아들 말 안 듣는데, 좀 맞아야돼.
 아니, 느이아빠 말고 권이가 말 안들으면 지 색시한테 맞아야지~
 그러자 우리 문여사가 발끈한다.

 어머님, 제 아들은 얼마나 착한데요, 어머님 아들 같지 않아요~ 호호호호

 아빠가 옆에서 듣더니 막 웃는다.
 할머니 미간에 주름이 살짝 생기더니, 그래도 안돼~ 하신다. 풉.
 두어시간을 더 있다가 이제 가야한다고 일어나니
 아쉽다고, 저녁먹고 가면 안되냐, 자고 가면 안되냐 하신다.
 거동이 불편해 멀리까지도 못 나간다며,
 다음달에 영감님 생신인데 꼭 오라며, 내 손을 또 잡는다.
 알았어요- 다음달에 꼭 올께. 밥 많이 먹고, 아픈거 빨리 낫고~ 알았지?
 하니 오냐오냐, 알았다, 몸 조심하고- 하며 아직도 나를 어린 박진아로 생각하는 우리 할머니.

 





 엄마와 아빠도 본가로 돌아가고, 나도 집에 돌아왔다.
 낚시 갔다온 당신과 저녁으로 보쌈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살고 있던 임대아파트가 분양전환이 되었고,
 당신의 부모님께서 전원주택을 지으신다고, 설계도면 좀 보고 있었다고.
 장가 갈 생각을 안 하는 아들때문에 용한 점집을 갔더니
 가는 곳곳마다, 아들에게 여자가 있다고, 애인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도대체 누구냐, 데리고와라, 성화시란다. 
 
 나는 말을 돌리려, 우와- 그 점집 진짜 용하네? 어디야, 나도 한번 가보게- 하고 웃었지만
 당신은 내 이마를 콩, 때리며 웃기냐,이게.. 한다.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젓가락만 깨작깨작, 샐러드 접시를 뒤적인다.
 
 내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그래도 좀 나았을까?
 내가 그때 당신 손을 놓았더라면, 우린 이렇게 서로 속앓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머리 속이 복잡하다는 당신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 무엇때문에 머리가 복잡한지 너무 잘 알아서.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되니까.
 내가 덜어줄 수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이야기들, 문제들.
 
 나는 내 손으로 당신 놓기 싫으니까. 후회할게 뻔하니까.
 나는 그냥 당신도 내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냥 큰맘 먹고, 내게, 그냥 따라오라고, 내가 하자는대로 하자고, 그렇게 말해주면
 나는 어디든 따라갈텐데, 하는 마음.
 
 그러기엔 당신이 현실적인 사람이란걸, 잘 알고 있다.
 닥달하지도 못하고, 그냥 묵묵히 당신 손을 잡고 있을 수 밖에.
 예전보다는 조금 덜, 불안하다.
 그냥 믿는거. 이제는 그냥 믿는거...
 언제 당신이 내 손을 놓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되나 불안해하지 않고
 그냥,
 당신도 내 손을 잡고 있을거라는 것.
 그리고 간간히, 함께여서 좋다고 표현하는 당신을 믿는 것.
 그 순간순간이 진심임을.


 그를 안으면
 마치 처음 사람을 안는 것처럼 아직 떨린다.
 내 머리카락을 넘기고, 쓰다듬고, 입 맞추고, 안아줄때마다
 그 손길하나하나가 '사랑해'라고 말하는 듯해서 행복하다.
 팔베개를 하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라도 내가 옆에 있는걸보고
 내 어깨를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넘기고 이마에 입맞춤해주는 당신이 좋다.

 좋아? 라고 묻는 내게 응- 하고 무성의하게 대답했다가
 뭐가 좋아? 라고 다시 묻는 내게, 웃으며 같이 있으니까- 하고 다시 대답해주는 당신이 좋다.


 

무아덕회   15.03.23

무슨 일기를 이렇게 '작품'처럼 쓰시나요...^^

向月   15.03.24

이게 작품이라면, 졸작..이겠죠? 푸흐..
몸은 괜찮아요?

무아덕회   15.03.24

네. 완전치는 않지만...밥은 먹을수 있어요. ㅎㅎ

기쁘미   15.03.24

반색이 저 반색이 아닌데 말해야하는데 하는데도 한참을 읽었네요ㅋㅋ

기쁘미   15.03.24

아, 재밌게요^^!

질주[疾走]   15.03.25

보기 좋으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