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았는데, 평범하게 지난한 하루를 잘 지내다가
툭.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에 다 젖어버리듯 그런 날이 있어요.
한결같은 내 마음, 변함없는 내 마음과 달리
쉬이 변해버리는 사람들과 물건들이 그래서
한번씩 주저앉고 말아요.
감정표현이 솔직한 내가,
분명 솔직한게 잘못이 아닐텐데- 솔직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런 나를 감당하기 힘들어하고,
스스로도 아, 아니구나- 하며 숨기고 감추고 거짓을 말하게 되는 지금.
벌써 11월이에요.
제가 사는 곳은 바람이 많이 불어요.
산 허리를 깍아 만든 동네라, 해 질 무렵이면 산바람이 온동네를 휘감아 다녀요.
나무가 뽑힐 듯한 바람. 날리고 날리는 낙엽들.
아직 11월인데 어느새 꺼내놓은 옷들은 겨울 옷이네요.
분명 겨울은 12월부터 시작될텐데.
눈을 뜨면서 하루를 약으로 시작해요.
한웅큼 털어넣고 물 한모금 꼴깍 하며 시계를 봐요.
항상 7시 20분입니다.
동네를 순찰 돌 듯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와 씻고 책을 봐요.
그리고 가끔 책을 들고 카페로 향합니다.
어른이 되면,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실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 아이이고 싶어서인지, 어른이 아니라 그런지
늘 달달한 커피를 즐겨요.
하루는 큰맘먹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 한입 맛보고-
다시 바닐라라떼로 바꿨다죠.
커피향이 좋고, 텀블러에 담긴 온기가 좋아 한참을 바라보고 있기도 해요.
카페에 나오는 음악이 좋아서 서너시간을 너끈히 앉아 공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낙서를 하고 나옵니다.
하루가 단조로워요.
복잡하지 않고, 꾸준히 이런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보니
가끔 지겹기도 한데,
그럴땐 조금 특별한 일을 만들기도 해요.
쿠키를 굽고 마카롱을 굽고, 서점에 나갔다온다거나, 술을 한잔 한다거나.
살짝만 뒤틀면, 이렇게 즐겁고 다양한 삶인 것을.
어쩌면 평범한게 좋은건데.
많이 건강해졌어요.
물론 병원에 다녀온 날은 많이 힘들지만,
내 몸 속에 자리잡은 녀석은 더이상 자라지않고 가만히 있네요.
이번 항암이 다음 주면 끝이 나는데,
그리고 두어달 뒤에 다시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나는 내가 많이 건강해졌다고 생각해요.
내가 느끼는게 정답이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운동하지 않은 날들이 늘어가면서, 근육이 사라지고 있어요.
기초체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다시 해야하는데, 꼭 나는 왜 추운 겨울에 운동하겠다고 이리저리 다니는건지.
곧 겨울이 되면 눈이 또 내리겠죠.
나는 또 산에 갈 준비를 하고, 오르고 내리고,
가슴 가득 하얀 산줄기를 담고, 또 새해를 시작하겠죠.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또 1년이 가고..
나는 또 그렇게 살아지겠죠?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
그러니 걱정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