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나의 발견은 불이었다.
그때 난 세상에서 불이 제일 이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불에게 이쁘다는 단어는 안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쁘다는 말엔 귀염성이 포함됐는데 불의 모습은 이쁨보단 아름다움에 가깝다.
불이 이쁘다는걸 발견하고는 심심하면 불장난을 했다.
겨울엔 길을 가다가 커다란 드럼통속에 땔감을 넣고 불을 피우는 걸 가끔 목격하는데 그거 본 날은 꼭 목적지에 늦는다.
너무 이뻐서 하염없이 보다가 정신이 멍해진다.
여름엔 공사장같은데서 태우는 나무토막들을 발견하면 길을 못간다.
가을엔 낙엽을 모아서 태우는걸 발견하면 길을 못간다.
불은 너무나 이쁘게 타고 있었다.
불이 좋아서 밤에 촛불켜놓고 처음엔 집에서 제사지낼 때 쓰는 초에 불을 붙여 보다가 나중에 매니아가 됐을땐 틈틈이 이쁜 양초를 사다가 한꺼번에 피워놓고 혼자 궁상도 떨어 보고 그랬다.
불은 쳐다 봐도 쳐다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춤을 추는 듯한 타오름 사이로 색깔도 다양하다.
아무리 얌전한 촛불도 자세히 보면 시시각각의 모양을 낸다.
이런 불장난 때문에 엄마한테 맨날 혼나고 그랬다.
실수로 휴지에 불이 옮겨붙어 난리 피운적도 있었고 내 편지꽂이도 홀라당 태워버린 적도 있다.
커피숍에 앉으면 무의식적으로 불장난을 했다.
80년대~90년초엔 칸막이가 쳐진 어두운 커피숍이 유행해서 안들키고 조용히 불장난하기 좋았다.
조그만 종이조각에 불붙여 재떨이에 담가놓고 불이 다 타가면 또 종이 조각 찢어 넣고 그렇게 한참 좀 시큰둥해 질때까지 불장난을 즐기곤 했다.
성냥으로 불붙일 때 성냥각을 긋는 느낌도 아주 좋아했다.
특히 불이 촤아 하고 붙는 그 순간의 쾌감은 아주 굿이었다.
최대한 성냥끝이 다 탈 때까지 버티기 기록을 혼자 내보기도 하고 꺼트리지 않기 기록을 내기 위해 옮겨 붙이기 연속동작 기록같은 것도 혼자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양하고 창조적인 불장난을 즐겼다.
그래서 난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는데도 라이타를 항시 들고 다녔다.
심심하면 불을 피워보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커피숍을 나갈때다.
알바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해서 재가 된 쓰레기들을 챙겨 나가거나 얼른 도망가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유아적 집착같은건 많이 버렸다.
물론 그런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의 불장난은 위험하고 잘못된거다.
지금은 안그런다.
물론 최근에도 밤에 불끄고 초 켜놓고 물끄러미 시간낭비를 하기도 하지만 위험한 아름다움에 도전하는 무모함은 안한다.
지금도 친구랑 카페에 가면 가끔 초를 켜논 어두운 카페에 가게 될 때도 있다.
그럼 또 촛불에 자꾸 정신을 뺏긴다.
그리고 겨울이면 불꽃놀이 세트를 잔뜩 사다놓고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앞에서 불꽃놀이 하는거 되게 좋아한다.
한번은 씨끄러운 폭죽같은거 터뜨리다가 경비아저씨한테 혼난적도 있다.
누가 나의 이 방화벽을 정신병에 비유하는 기분 나쁜 소리도 들어봤지만 다른 이유는 없다.
불은 너무 이쁘고 불장난은 너무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