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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
 악몽   카테고리가뭐야
조회: 2129 , 2002-10-28 12:52
사람마다 다른 종류의 악몽을 꿈꾸겠지만 난 부동의 자리를 지키는 내 최악의 악몽이 있다.

그건 원치 않는 남자와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꿈이다.

이상하게도 이 꿈은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줄곧 똑같은 꿈이 따라 다니면서 내 강박증을 도지게 한다.

스토리는 결국 다 똑같은 원치 않은 결혼이지만 내용이나 구성이나 상대는 늘 달랐다.

얼마나 많이 꿨는지 기억도 안난다.

어릴때 처음 이모 결혼식장에 갔을때 늘 보던 이모가 아닌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모습을 하고 예식장에 들어서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몹시 부끄러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허멀건 웃긴 드레스를 입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모만 쳐다본다.
그 사이를 행진한다.

누군지 모르는 낯선 남자와 팔짱을 끼고 연설이 끝날때까지 서있는다.

사랑의 맹세 어쩌구를 공포한다.

어린 나이에 내가 느낀 사랑이란 단어는 얼마나 낯뜨겁고 남사시럽던가.
그런 챙피한걸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발표한다니 걱정지수는 계속 올라간다.

왠지 챙피한 음악에 맞춰 퇴장한다.

이 모든 과정이 나한텐 공포였다.
사람은 크면 다 저런걸 해야하나부다.

나두 하게 되면 어떻하지.

그 나이때 학교를 곧 가게 될걸 걱정해야 더 현실적인것을 난 미리부터 결혼식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어릴때 또 다른 공포심으로는 고등학생이 되면 모두다 전국체전이나 올림픽에서 마스게임을 해야 하는줄 알았다.

저렇게 딱 붙는 단체 의상을 맞춰 입고 요가도 아니고 저런 동작을 취해야 하는거야?!

그 장면이 전국에 티비를통해 방송된다구??

어쨋든 결혼식에 대한 공포심은 나에게 어떤 결혼식 관련 환상같은건 상상도 못하게 만들었다.

난 모든 여자들의 소원이 웨딩드레스입어보는거라는 말에 심한 거부감을 갖는다.

도데체 저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남들 다보는데서 외간 남자(어쨋든)랑 행진을 해야하는걸 여자의 평생소원이라고 생각하다니..

성대한 결혼식에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풍족하고 즐거운 행복의 파티라는 뉘앙스도 전혀 와닿지 않는다.

나에게 결혼식은 찾아가면 공짜밥을 먹을 수 있는 곳 이상이 못된다.

축하의 마음도 솔직히 잘 들지 않는다.

이게 축하해야 할 일인지 실감이 안는데 축하한다고 말하는건 거짓말 같아서 그런 말도 잘 안나온다.

결혼식이 싫어서 그럼 결혼도 싫은건가.

난 결혼도 싫다.

어쨋든 결혼은 나에게 강박적인 부자유를 느끼게 한다.

내 주변엔 결혼예찬론자인 기혼자들이 많다.

결혼을 하고 나서 결혼이 이렇게 좋은지 알았다면서 덕경아 너두 빨리 결혼해라 라며 진심으로 자신이 체험한 좋은 경험을 나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 호의에 대한 반발도 아니지만 난 이게 편견이건 잘못된 생각이건 결혼이 싫고  행여나 나중에 내가 이 생각을 바꾸게 될까봐 두렵다.

난 그냥 나인게 좋다.

누구의 와이프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결혼안하고 나이 먹는 여자들 어딘가 정신적으로 히스테릭해 보이고 불안정하며 어디가 모자란게 아닐까라는 편견을 주는거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런 여자 중에 하나고 불만없다.

아침에 낯선 남자 침대에서 깨어나 이 사람을 남편이라고  부르면서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난 몇십년을 혼자 자는 버릇이 몸에 뱄다.
누구랑 같은 침대 쓰는거 싫다.

난 밥챙겨먹는걸 디게 귀찮아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 밥까지 챙겨주는거 못한다.

난 충동적으로 움직이는거 좋아하고 허락받거나 보고하는걸 이상하게 싫어한다.

밤중에도 친구들에게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고 한밤중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면 뛰쳐 나갈 수 있어야 좋다.

난 여자친구도 좋고 남자친구도 좋다.

결혼하면 남편과 이 많은 친구들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혼해도 마음을 자유롭게 갖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까지 결혼한 나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게 하는건 어렵다.

그들도 이제 기혼자 덕경에게 갑자기 불러내고 밤늦게 전화하는데 걸림돌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수시로 로맨틱한 환상에 빠지면서 사랑에 빠질듯이 가슴을 약간씩 들뜨게 만들어 놓고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즐겁다.

난 남자를 아주 필요없는것도 무시하는것도 아니다.

난 남자가 필요하다.

남자의 매력을 느끼는걸 남몰래 즐거워 하면서 정신적인 바람을 핀다.

그런 내 마음속의 환상이 불륜의 씨라는 오명으로 얼룩지게 하기 싫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대상에게 내 목숨보다 중한 사랑을 해야한다.

난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사랑에 눈멀어 집착과 불균형한 생각에 둔해지기 싫다.

결국 결혼이 싫다는건 책임감을 느끼기 싫단 말이기도 하다.

책임감이 싫다는건 바꿔 말하면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는 것과 같다.

강한 책임감과 완벽성때문에 미리 책임감이 두려운 것이다.

혼자 외로운건 참을 수 있지만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운건 더 참을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고독하고 외롭다는건 인정한다.

노후엔 어떻게 할거냐 뒤늦게 후회하면 어쩌냐 친구들이 언제까지 니곁에 있을 줄 아냐 부모님 맘을 알기나 하냐 혼자 살 자신있냐 니가 그렇게 잘 났냐라는 모든 질문에 대해선 노코멘트다.

그냥 혼자 외롭고 힘들고 말란다.

늘 꿈이면 결혼식 전날이거나 결혼식 바로 직전이었다.

난 그 우스운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 옷차림은 상상하기도 싫어서 깨고 나면 입고 있었단 기억만 나고 입은 모습은 기억이 안난다.
가슴은 심하게 뛰면서 공포에 짓눌려있다.

부모님은 내 의견도 없이 억지로 나를 결혼시키기 위해 상대 남자를 정해놓고 나를 데리고 온다.

난 상대 남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무섭다.

부모님을 배신해야 한다는 아픔과 모든 참석자들을 무시하는 불의를 불구하고 난 뛴다.

어디론가 도망간다.

도망가면서도 아무 대책도 아무 대안도 없다.

무작정 도망가는 내 가슴속은 타오를거 같고 혹시라도 발각되서 강제로 결혼하게 될까바 두려움에 진땀을 흘린다.

그렇게 불안의 극치에서 잠을 깬다.

그렇게 잠을 깨면 어금니가 아프고 어깨가 결린다.

하지만 어제 꾼 꿈은 조금 달랐다.

부모님의 어이없는 독단은 똑같지만 난 이미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다.

난 이미 끝난 결혼식장에서 절망하면서 도움을 청한다.

어디로든 도망가게 해 달라면서 울어버린다.

아..벌써 식을 끝내고 말다니..

내가 결혼식전부터 꿈을 꿨다면 그 전에 도망가는 꿈으로 바꿨을텐데 내가 늦게 도착한 꿈속에선 내가 이미 결혼식을 올린 뒤였다.

그래도 난 아직까지 도망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달린다.

어딘지 모른다.

무섭다.

하지만 도망안가고 가만히 있는 것보단 절망적이지 않다.

그래서 또 도망간다.

아마 안전한 곳에 도망가서 자유로운 나 자신의 모습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