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정신과 정도언교수 '잠'
▲ 서울대병원 정도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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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1/3~1/4은 잠이다. 80세까지 산다면 20~25년을 잠자리에서 보낸다. 그 세월 만큼 인생을 허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해(苦海) 속에 표류하는 나약한 인생에게 주어진 달콤한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피곤하고 지쳐버린 육체와 영혼에 새 기운, 새 희망을 불어 넣는 게 잠이다. 천근만근의 무게로 심신을 짓눌렀던 어제도 잠을 자고 나면 과거가 되고, 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휴일 아침,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평안함을 “게으르다”고 말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슬프고 무미건조해 질까?
19세기 초반까지 사람들은 잠을 각성과 죽음의 중간상태로 생각했다. 밤에 뇌가 휴식상태에 들어가면서 잠이 들고, 아침에 뇌가 깨어나면서 잠이 깬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잠을 자며 꾸는 꿈은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돼지꿈을 꾸거나 똥을 보면 횡재를 한다고 생각했고, 땅 속으로 꺼지거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면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 했다. 꿈이 애매모호할 때는 그 의미를 밝히는 ‘해몽사(解夢士)’를 불렀다. 이같은 ‘비과학’은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정도언 교수는
정도언 교수를 취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기자의 ‘입맛’에 맞게 의학지식을 ‘가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지 틀리지 않다면 대충대충 넘어가줘야 기사 쓰기가 수월하지만, 그는 항상 의학적이고, 원칙적이고, 정확하게 말하기 때문에 약간만 내용이 어긋나거나 비약되면 “노(NO)”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 바람에 애초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전화를 끊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레지던트나 병원 직원들에게도 ‘깐깐’하긴 마찬가지다.
조금도 과오나 편법을 인정치 않는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에게 가장 정확하고 꼼꼼한 진료를 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참 의사’의 길을 배운다”고 말했다.
1951년생인 정 교수는 1976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정신분석학, 스트레스의학 및 수면의학이 전문분야. 국내 프로이드 학파의 ‘거두’인 조두영 서울의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어받아 지난 5월까지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 1991년 한국인 의사로는 최초로 미국수면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며, 1992년 서울대병원에 국제 수준의 수면다원검사실을 최초로 개설하는 등 국내 수면의학을 이끌어 오고 있다.
대한수면의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디지털 수면다원기록기의 개발, 만성 난치성 불면증의 단기 입원치료 프로그램 개발 등이 그의 업적이다. 그러나 수면의학이 너무 생물학적 의학만 강조해선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수면장애 환자의 마음속까지 이해하며 진단·치료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대병원 홍보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던 정 교수는 의학 이외 분야에 대한 시사 및 문화비평적 감각도 뛰어나 영러 일간지와 시사 주간지에 고정 컬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의 한 대학원생이 잠을 자는 어린아이의 눈이 어느 순간 마치 무엇을 보는 듯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꿈과 관계되는 수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이라 명명했다. 안구가 급속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또 다른 대학원생은 잠이 마치 건축 구조물과 같이 단계와 구조가 있는 복합적이고 질서있는 현상임을 발견하고, 잠을 깊이에 따라 1~4단계로 구분했다.
현대 수면의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잠을 설명해 보자. 사람의 잠은 1~4단계로 분류되며, 꿈을 꾸는 렘 수면 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 잠이 들땐 얕은 잠인 1단계를 거쳐 2-3-4단계로 진행되며, 4단계가 끝나면 렘 수면 단계로 올라와 첫번째 꿈을 꾸게 된다. 렘 수면이 끝나면 다시 1~4단계 중 어느 한단계로 돌아갔다 다시 렘 수면으로 돌아오길 하룻밤에 4~6회 반복한다. 수면시간의 첫 1/3에 깊은 잠 즉 3,4단계 수면이 집중돼 있고, 끝 1/3에 렘 수면이 집중돼 있다. 깊은 잠 단계에선 외부 자극 없이 잠을 깨는 일이 거의 없는데, 깊은 잠은 보통 새벽 2시 정도에 끝난다. 그 이후엔 얕은 잠과 렘 수면이 반복되는 게 보통이다.
꿈을 안 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성인의 잠은 20~25%가 꿈이고, 아기의 잠은 절반 정도가 꿈이다. 꿈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일반적으로 심리적이고 애매한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논리적인 사람보다 꿈을 더 잘 기억한다. 또 꿈꾸는 도중이나 꿈 꾼 직후 잠을 깨면 꿈을 더 잘 기억한다. 렘 수면, 즉 꿈을 꾸는 도중에 깨워 방금 꾼 꿈을 물어보면 약 85%가 꿈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만, 렘 수면이 아닌 단계에서 깨워 물어보면 약 5%만이 꿈을 기억한다는 연구도 있다.
▲ 서울백병원 수면장애클리닉 손창호 교수가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있는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를 통해 보고 있다./ 조선일보 DB사진
그렇다면 사람은 왜 잠을 자야 할까. 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피로회복이다. 수면 중엔 신체의 모든 기관이 휴식상태에 돌입하고 낮 시간에 축적된 각종 피로물질이 분해된다. 잠을 못자면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하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아는 상식이다. 강제로 잠을 못자게 하자 각종 호르몬 체계가 교란되고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사망했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잠이 부족하면 피로, 집중력 저하, 짜증, 환각, 망상, 공격성 증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또 수면 중엔 성장호르몬이 집중적으로 분비되므로, 어린이가 잠을 적게 자면 키가 덜 자란다.
잠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정보처리와 갈등해소 기능이다. 이것을 담당하는 게 꿈이다. 사람의 꿈은 과거의 기억을 정리, 분류, 삭제, 저장하는 일을 담당한다. 쓰레기와 같은 과거의 기록을 모두 떠 안고 살아간다면 그러잖아도 복잡한 인생이 얼마나 고달퍼질까. 꿈을 통해 사람의 뇌는 필요하고 유용한 기억을 저장하고, ‘쓰레기 기억’을 삭제하게 된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려면 잠도 충분히 자야 한다. 졸리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밤 늦게까지 공부해 봤자 입력된 정보가 저장될 시간이 부족해져 학습능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꿈을 많이 꾸면 “잠을 설쳤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심지어 악몽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과 같은 충격 이후 겪는 악몽은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나쁜 경험을 통합해 다소의 치료적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악몽이 지나쳐 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는 예외다.
사람은 몇시간 정도 잠을 자야 할까. 어떤 사람은 4시간만 자면 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7~8시간은 자야 된다고 한다. 모두 정답이 아니다. 적정 수면 시간은 체질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긍정적·적극적인 사람은 수면시간이 짧고, 수동적·소극적인 사람은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수면시간은 최대 30분 정도며, 그 이상 억지로 줄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수험생이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폴레옹이 토막잠을 여러번 나누어서 잔 것으로 유명한데, 잠은 한번에 이어 자야 1~4단계와 렘 수면이 적절히 조화돼 피로회복, 신진대사, 성장, 기억력 저장 등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잠이 모자란 현대인은 엉덩이만 붙이면 어디서든 쉽게 잠에 빠져들지만 불면인들은 잠을 자기 위해 매일 밤 사투(死鬪)를 벌인다. 사실 불면의 고통은 사람이 겪는 가장 혹독한 경험 중 하나다.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어제도 잠을 못 잤다”는 사람에게 “잠 안 오면 책도 읽고, 비디오도 보고, 정 심심하면 일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 나도 한번 불면증에 걸려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에겐 주먹이라도 한방 날리고 싶은 게 불면인의 심정이다. 필자도 한 때 그같은 불면을 경험했다.
침대속의 불면인에겐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것 같다. 잠을 청해보려 갖은 애를 쓰다 버럭 화를 내며 침대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처절함이 매일 밤 계속 된다. 견디다 못해 때로는 무작정 집을 나와 ‘몽유인(夢遊人)’처럼 길 거리를 배회하기도 하고, 포장마차를 찾아 소주를 마셔보기도 하지만 그럴 수록 정신을 더욱 또렷해 진다. 이렇게 잠과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4시가 지나가 5시도 지나, 창문이 훤하게 밝아온다. 그 고통을 도대체 누가 알아줄까. 이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거나, 실제로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불면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병이라기 보단 열이나 두통 등과 같은 증상이다. 수 없이 많은 원인들 때문에 불면이란 증상이 나타난다. 걱정이나 근심 등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때로는 사지운동증, 두통, 그 밖의 통증 등과 같은 신체적 질병이 불면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불면증이 심한 경우엔 수면다원검사 등을 통해 불면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수면다원검사란 8시간 정도 잠을 자게 하며 뇌파와 안구운동, 심전도, 근전도, 호흡, 코골이, 이갈이, 혈중 산소 포화도 등 수면에 영향을 주는 모든 현상을 관찰-측정-판독하는 검사다. 만성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사지운동증, 기면병(嗜眠病), 악몽 등 초수면 장애, 이갈이 등의 병을 진단하는데 유용하다. 대형병원 수면장애센터(곳에 따라 정신과, 호흡기내과 등)에서 받을 수 있으며 비용은 50만~80만원 선이다.
불면증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는 잠을 자다 중간에 자주 깨는 것, 셋째는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중 잠이 들지 못하는 유형이 가장 많고 증상도 가장 심각한데, 이 경우는 스트레스 등 심리적 이유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간에 자주 깨거나 새벽에 깨는 불면증은 신체적인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코를 심하게 골면서 일시적으로 숨을 쉬지 않는 수면무호흡증이나, 무릎 아래 다리를 주기적으로 떠는 사지운동증 등은 숙면을 방해해 잠에서 자주 깨는 원인이 된다.
잠이 들지 못하는 유형의 만성 불면증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늪과 같아서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더욱 더 정신이 또렷해지는 게 특징이다. “오늘은 기어코 잠에 들겠다”고 다짐하며 최적의 수면조건을 갖추고 잠자리에 들지만 갑자기 “이러다 또 잠이 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초조감이 음습하면서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제와 같은 고통의 밤이 오늘도 이어지게 된다.
잠을 자겠다는 의지는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최대의 위험 인자다. 따라서 “잠이 안오면 억지로 자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침대에 눕지 않는게 불면증 치료의 첫 걸음이다. 사람은 하루 이틀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전날 잠을 못잤더라도 잠을 보충하려 하지 말고,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잠이 안 오면 침대에 누워있기 보다는 책을 보거나 일을 하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새벽이 가까와지고 다시 초조해 지는데, 이 때 물러서면 안된다. “그래 이왕 못 잤는데, 오늘도 자지 말자”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갖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견딜 수 없이 잠이 쏟아지고, 그때 침대에 몸을 누이면 잠들기에 성공할 수 있다.
신체질환 때문에 생긴 불면증이 아니라면 불면증 환자는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퇴직자에게 불면증이 잘 나타나는 것은 취침시간, 기상시간, 식사시간 등 생활리듬이 불규칙하고, 이 때문에 뇌 속의 생체시계가 교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규칙적으로 생활하도록 노력하고, 전날 잠을 설쳤다고 낮잠을 오래 자는 것은 좋지 않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운동은 육체적 피로를 유발해 수면에 빠져드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밤 늦은 시간 운동을 심하게 하면 인체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교감신경계가 자극돼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잠을 청하기 어렵게 된다.
밤에 너무 뜨거운 물로 샤워나 목욕을 해도 교감신경계가 자극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로 목욕이나 샤워를 하면 인체를 편안한 휴식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부교감신경계의 세력이 우세해져 잠을 쉽게 청할 수 있다.
술이나 담배, 카페인 음료 역시 교감신경계를 자극하므로 불면증 환자는 조심해야 한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수면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면제는 습관성과 내성이 있으므로 전문의 처방을 받아 한달 이내만 복용해야 하며, 매일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한편 불면증 환자는 벽 시계를 치워 버려야 한다. 침대에 누워 시계를 자꾸 쳐다보면 뇌의 기능이 활성화되고, ‘아직도 못 잤다’는 패배감과 불안감에 젖게 돼, 헤어날 수 없는 불면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불면증과 더불어 가장 흔한 수면장애는 수면무호흡증이다. 얼마전까진 코를 심하게 고는 것을 병으로 치지 않았다. 그러나 코를 심하게 골면 수면무호흡증이 유발돼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 등이 더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의 질이 떨어져 피로회복이 더디고 집중력·판단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코를 심하게 곤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 볼 필요가 있다.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되면 코에 산소 마스크 같은 것을 끼고 자는 상기도 양압기를 사용하거나, 마우스피스 처럼 생긴 것을 입 속에 넣고 자는 구강내 보조장치를 사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엔 입이나 코에 무엇을 물고 끼고 자는 게 무척 거추장스럽지만, 익숙해 지면 큰 불편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비강이나 인후두부를 수술해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기도 한다.
사지운동증, 기면병, 몽유병 등도 비교적 흔한 수면장애다. 잠을 못자는 불면증과 달리 기면병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잠이 쏟아져 심지어 말을 하거나 식사를 하다 잠에 빠지는 병이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은 웃거나 흥분하면 갑자기 온 몸 근육의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이 나타나 간질 치료를 받는 일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잠들 무렵 환각현상이나 가위눌림 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10대에 시작돼 학업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만 조기 발견해 약물치료를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사지운동증은 무릎 아래 근육을 주기적으로 수축시키는 병으로 그 바람에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며 당뇨나 신장질환, 빈혈이 있는 경우에도 비교적 흔하게 나타난다. 술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경우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병은 약물로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다. 사지운동증과 유사한 병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종아리가 저리거나 가려워서 잠이 들 수 없는 병도 있다. 이 병 역시 약물 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렘수면 운동장애는 흔하진 않지만 매우 위험한 수면장애다. 렘수면 단계에 들어가 꿈을 꿀 땐 온 몸의 근육이 풀어지기 때문에 정상인들은 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나 렘수면 운동장애가 있는 사람은 근육의 힘이 남아 있어 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따라서 강도를 때려 잡는다고 옆에서 자는 아내를 주먹으로 내려치거나, 악당을 피해 도망간다고 뛰어가다 벽에 얼굴을 부딪혀 부상을 당하는 등의 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이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과거엔 렘 수면 운동장애가 있는 사람이 잠들기 전 두꺼운 가죽 혁대나 쇠사슬로 몸을 침대에 묶었으나, 요즘엔 근육을 이완시키는 약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수면장애는 개인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집중력·판단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교통사고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7000만명 이상이 한 종류 이상의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에선 이 때문에 수면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1993년 국립수면장애연구소를 세워 수면장애를 연구하고 있다.
또 10년쯤 전부터 수면의학 전문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90년대 중반부터 수면의학 전공자를 양성하고 있지만 아직 전문의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국가차원의 수면의학 연구도 전무한 실정이다. 산업안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국가가 수면의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시점이다. 수면은 인생의 1/3~1/4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호준 기자·조선일보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