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1172 , 2005-04-24 17:01 |
▲ '뚱뚱교 교주' 김현숙이 대학로 소극장 개그콘서트 무대에 서자, 객석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은 더 떠라, 그래야 교회가 알려지니 네가 더 떠야 한다고 하시는데요? ... 제가 중간에서 주저앉으면 종교를 비하했다고 인정하는 게 아닌가요?"
'뚱뚱교 교주' 김현숙(28)은 당당했다. 지난달 20일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에서 첫 선을 보인 '출산드라'는 개신교 폄하 논란 속에도 거침없이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1월 중순 '꼭 그렇지만은 않아'로 처음 방송을 탄 지 3개월이 못된 신인 개그우먼이지만 '출산드라' 캐릭터로 가장 시끌벅적한 데뷔를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2일 저녁 그가 서울 대학로 '갈갈이패밀리 개그콘서트' 무대에 서자, 객석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폭소가 터져나왔다. 멀게는 고(故) 최용순, 가깝게는 조혜련·이영자 등 이른바 '비만형 개그우먼' 선배들이 누렸던 프리미엄이 그에게도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된 '종교' 코드를 건드린 것이 김현숙에게 도약대가 됐다.
"사람들이 금방 알아보는 건 아니고 '누구 닮았네요'라는 말을 많이 하더니 이제는 백화점 같은데 가면 사인해달라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얼마 전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최근 들어서야 (소속사에서) 차를 붙여주네요."
사실 김현숙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를 거치지 않고 '봉숭아 학당'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개콘 담당PD는 김현숙의 투입이 개콘의 간판코너에 활력을 불어넣으리라 기대했지만, 김현숙은 신인으로서의 중압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박준형 선배가 '교주 캐릭터 어떠냐'고 조언"
후배 개그우먼들과 '꼭 그렇지만은 않아'로 방송감각을 익히는 한편, 그 사이에 옥동녀 '출산드라'를 순산했으니 출발이 아주 좋은 편이다.
"예전부터 풍자개그를 해보고 싶었는데, 박준형 선배가 '교주 같은 캐릭터 해보면 어떻겠냐?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조언을 해줬어요. 처음에는 뚱비교, 비만교를 생각했다가 가볍게 뚱뚱교로 가기로 했다. 여기에 '뚱뚱한 게 정상'이라고만 얘기하면 너무 단순한 설정이니 음식을 의인화해서 '출산드라' 캐릭터에 생기를 넣기로 했죠."
고등학교 2학년때 사이비 종교단체의 문턱을 잠시 넘나들었던 기억, MBC 등 TV 사회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사이비 교주들의 말투·행동거지 등이 덧붙여져 마침내 '출산드라'가 탄생했다.
"고교 연극반 하던 시절에 연습공간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어떤 친구들이 연습공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 'E성회'였어요. 처음에는 개신교의 한 계파인줄 알았는데, 교주라는 분이 '슉슉' 소리를 내면서 축복을 주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다시는 안 갔죠. 나중에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그냥 웃기만 하시더라구요."
그 자신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사이비 교주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출산드라' 파장은 엄청났다. 방송이 4주차에 접어들면서 다소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부 개신교인들은 '출산드라'의 '신성모독'에 강한 불쾌감을 표출하는 글을 시청자 게시판에 꾸준히 올리고 있다.
▲ 김현숙씨는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사이비 교주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출산드라' 파장은 엄청났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현숙은 작년 9월부터 서울 미아3거리 송천교회에 다니고 있다. 모태신앙에 어머니가 권사이고 남동생이 신학생(경성대)라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정체성'에 대한 교단 일각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지난 8일 '출산드라'를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낸 한국교회언론회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1대1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를 믿는 분들도 많아요. 개신교의 병폐죠. 찬양하고 춤추는 것에 대해 경망스럽다고 얼굴 찌푸리는 분들이 있는데,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아닌가요? 어머니와 남동생 등 가족들도 모두 '열린생각'을 갖고 있어요. 부산에서부터 저의 신앙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저를 의심하지 않아요."
"첫 방송에서 '부활' 얘기했다면 칼 맞았을 지도..."
말은 이렇게 해도 그 자신도 첫 방송이 나간 직후에는 무척 놀랐던 모양이다. 솔직히 찬송가를 부르는 부분에서만 꺼림직했지, '출산드라' 자체가 논란에 휩싸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동료중에 심지어 "출산드라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사이비종교 신도들 같고, 응원해주는 쪽이 합리적인 개신교인들 같다"며 그를 격려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종교전쟁'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첫 방송에서 '부활'이라는 말을 썼다면 칼 맞았을 지도 몰라요. 일부 개신교인들의 항의도 안타깝지만 반박하는 분들도 저의 개그를 개신교에 대한 폄하로 인정하고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출산드라'를 그냥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풍자로 보는 견해들이 내 의견에 부합되는데... 본의 아니게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죄송해요. 수위를 낮춰서라도 절충하고 '출산드라'는 최대한 해보려고 해요."
평소 컴퓨터와 친하지 않았던 그는 개콘 출연을 계기로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하게 됐다고. 틈 나는 대로 개콘 시청자게시판과 포털 뉴스사이트의 독자의견들을 모니터하는 것도 주요 일과가 됐다.
"대중들, 특히 네티즌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자라는 생각이 들어다. 연예인들이 워낙 노출되어 있다보니 '골라서 씹는' 재미가 있는 거죠. 성범죄자들처럼 얼굴 공개해야할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닌가? 인터넷 실명제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대학로 소극장에서 '갈갈이패밀리 개그콘서트'를 마친 개그우먼 김현숙씨를 분장실에서 만났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 네티즌 얘기 중에 본인을 아주 화나게 하는 표현은 없었나요?
"딱 하나 생각나는 게 있어요. '너희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고 할 때는 정말 고혈압 올라와서.... 어휴, 이거 IP 추적해서 찾아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뚱뚱녀 재미없다' '개신교가 장난이냐'는 글들은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부모님, 어머니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이런 얘기까지 들으면서 개그해야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 김현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러한 울분을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인터뷰 도중 그는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때문에 어머니가 굉장히 고생했다"는 집안 내력을 넌지시 털어놨다. 어디 있는 지는 '대충' 알지만, 잘 안 만나게 된 아버지. 지금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핏줄이니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는 만나겠다고 하지만, 그의 말씨에서 가벼운 떨림이 묻어 나왔다.
"뚱뚱하다는 개성 때문에 웃길 수 있어"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그의 화를 돋궈보았다.
- 다른 사람이 하면 안 웃기는데, 김현숙이 하면 웃기는 면도 없지 않죠?
"정확하게 보셨네. 그게(뚱뚱한 게) 저의 무기죠. 내가 날씬하면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연예인은 냉정하게 얘기해서 상품인데, 뚱뚱하다는 개성이 있으니 웃길 수 있는 거죠."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 이영자, 조혜련도 어느 순간 다이어트를 했어요. 김현숙도 어느 정도 인기가 생긴 후 '날씬녀'로 변신하면 지금의 캐릭터와 모순되는 게 아닌가요?
"2001년 뮤지컬 <넌센스>에 출연할 때 스포츠센터에서 12kg를 뺀 적이 있어요. 내가 계속 뚱뚱하면 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되니 변신을 위해서 할 수 있다고 봐요. 내가 뚱뚱하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껴서,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고 다이어트하는 게 아니라는 게 중요하죠."
- 배우가 되길 소망하는데 개그우먼 이미지가 굳어지면 배우의 길은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닌지?
"처음에 그 문제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군가 틀을 깨야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1번 타자'가 될 수 있다는 심한 자신감이 있죠."
인터뷰 막바지에 '출산드라'의 웃기는 비결을 물어보았다. 웃기는 데는 워낙 도통한 사람이라니 뭔가 특별한 게 나올 지도 모른다.
"사람은 편안함을 느껴야 웃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잘 이해해야 하죠. 테크닉만 놓고 보면 타이밍을 잘 맞춰야... 0.01초 빠르고 늦어도 웃음의 차이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