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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
 흡연16세   카테고리가뭐야
조회: 3014 , 2006-03-16 17:15

  

엄마가 김치꺼리 사러 가자고 했다.
엄만 은행앞 야채가게에 먼저 가있겠다고 했다.
급하게 준빌하고 조금 늦게 뒤따라 갔다.

계단을 내려가 현관밖으로 나가는데 입구에 중딩인지 고딩인지 애매한 16~17세 남자애들이 한무더기 빙 둘러 앉아 아직 남아있는 담배연기 속에 있는게 보였다.
개학했다 이거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교복을 입은 채로 간만에 몇 대 축내고 있는 모양이다.
10명은 족히 되보이던 무리를 지나치려고 하자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1. 아! 황홀하다.(왠 영계 한세트냐)
2. 고연 녀석! 남의 집 대문앞에서 담배를 피다니.
3. 이 시선들을 한가운데서 받고 있다니... 증말 뻘쭘다.

지나치려고 할때 눈 앞에 바닥 한가운데 흩어진 침이 보였다.
중 고딩 흡연족들은 유난히 침을 많이 뱉는다.
다른건 참겠는데 이건 못참겠다 싶어 나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한마디를 했다.

[여기다 왜 침을 뱉구 그래?]
라고 했던가.
[여기 누가 침뱉었어.]
라구 했던가.
아니, [요기 침뱉으면 돼?]
라고 했던거 같기두 하구...

기억은 안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빙 둘러선 16살들의 한가운데서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홀로 서있는 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끝까지 단호한 자태로 대답을 기다렸다.

누군가가 한 아이에게 [너 왜 침을 뱉구 그래~]라고 밀고하듯 다그쳤다.
그 한 아이에게 눈길을 줬더니 그 아이는 세상 모든 어른들은 다 티껍단 표정으로 쭈그리고 앉아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니까 문득 신문귀퉁이에 조그맣게 [담배피는 청소년을 선도하던 상계동의 주 모 여인, 보복 희생되다.]라는 기사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처음의 당당한 자세를 조금 고쳐서
[아니..집앞에서 담밸 피우면 냄새도 나고 주저리...침뱉으면 청소하는 아줌마도 힘들고...주저리.. 모를까봐 가르쳐 준거지...]
말을 조금 부드럽게 바꿨다.

눈치빠른 누군가가 [죄송합니다..치우고 가겠습니다] 라고 말을 해서 더 이상 용무가 끝나버렸다.
그런데 이 아쉬움은 뭐지..
지나가기엔 애들이 하나하나 다 너무 귀엽고 이뻐서 동생삼구 싶어 버렸는데...
그 짧은 새 정들어 버리다니..
짧아도 너무 짧은 거 아냐..
그들을 지나치자 마자 입에서 저절로 아휴~귀여워 라는 소리가 새나왔다.

하지만 쟤네들은 날 동네에 잔소리 많은 아줌마 쯤으로 볼까. 아니면 희한한 큰 누님 정도로 볼까 라는 문득 상황과 관계없는 좀 더 본능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아줌마라니..내 나이를 반접으면 저들 나이와 얼추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줌마라니.. 아..나도 엊그제같단 말이 어색하지 않은 학창시절이 있었는걸.

생각을 접고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찾아 야채가게로 갔다.
엄만 허리가 아파서 무거운걸 들지 못한다.
그래서 장을 보거나 소핑을 할때는 꼭 내가 따라가야한다.

아까 본 16살짜리들을 닮은 싱싱한 총각무우를 한무대기 사들고 집으로 오구 있었다.
오는 길에 엄마한테 [아까 나올때 현관에서 애들 담배피는거 봤어?]라고 물었다.
엄만 웃으면서 [애들 죽 둘러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피지 말라고 얘기를 해줄까 하다가 웃음이 나와서 말도 못하고 나왔다]구 했다.
엄마두 걔네들이 불량학생으로 보이기 보단 귀엽고 웃겼나 부다.

다시 현관을 통과하려니 아직도 학생들이 둘러 앉아있는게 보였다.
엄마랑 같이 들어가니까 혼자 지날때보다 기분이 더 든든했다.
그리고 아까 얘네들중에 날 아줌마로 오해했던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단 자격지심에 속으로 [봐! 난 아줌마 아냐..엄마랑 같이 살자너..] 라구 내심 의기양양해 했다.

엄만 애들을 보곤 웃으면서 [담배는 몸을 해치는 나쁜 약같은거니까 피지 마라..]하면서 계단에 앉아있는 한 아이 머릴 쓰다듬었다.
쓰다듬는 행위는 절대 누굴 야단칠때 하는 게 아니다.
엄마도 그냥 애들이 안쓰럽고 귀여우신거다.
나도 엄마의 선행을 뒤따라 그 아이의 머릴 쓱 만지면서 지나쳤다.
그러자 속에 응축된 감정이 말로 표출되고 말았다.
[귀여워라..]

그랬더니 애들이 일제히 이제 막 변성기가 지난 목소리로 한바탕 웃는거다.
당첨된 한 아이는 쑥스러워서 고갤 숙이고 부끄러워 했지만 싫은 기색은 아녔다.

그 애들을 지나치면서 힘들긴 하겠지만 남학교 학생들을 선도하는 멋진 여선생님이 되는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쟤네들도 만나면 한대 피고 거들먹거리며 길거리에 침도 뱉으면서 영역을 표시하고 싶을 나인데 쟤네들이 어디가서 담밸 피겠어.
학교에서 피겠어,대낮 공원에서 피겠어,돈도없는 애들이 카페를 가겠어.
기껏 찾은데가 남의 동네 현관에 주루룩 앉아 모의 작당하듯 담배피는거 밖에 못하잖아.
중고딩들을 위한 흡연장소가 있어야 겠단 생각이 얼핏 들기두 했지만 그렇다구 중고딩 흡연을 권장하는 듯한 그런 장소를 일부러 만들기도 이상하구...
내가 저 중에 몇 명만이라도 가끔 데리고 안전하게(?) 흡연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라는 이상한 측은지심이 들었다.

못피게만 윽박지르기엔 과도기상에 허용이 필요할텐데 그리고 저들의 억눌린 심정을 풀어주고 더 넓고 큰 것을 깨닫게 하면 저런 유치한 습관따윈 버릴 수 있는 아직은 순수한 나인데.. 누가 저들을 도와줄까..
현재 내 상황에선 오바스런 감정였지만 그래도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더 넓은 세상에 감동하고 더 크게 될 아이들의 미래가 보이는데 힘없이 지나칠걸 생각하니 맘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애들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아무리 불량스럽게 쭈그리고 앉아 침뱉으면서 담배를 태워도 애들은 애들인게다.
여럿이 모이니까 껄렁껄렁 해보이고 불량끼 있어보이지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만나면 정말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영혼일거란 확신이 들었다.

몇시간 후에 친구와 약속이 있어 다시 그 현관을 지나쳤다.
애들은 약속한대로 어떻게 침을 다 닦아놓고 사라졌다.
그러나 미처 치우지 못한 꽁초 하나가 구석에서 발견됬다.

다신 못볼 그저 스쳐 지날 아이들이겠지.
다시 보고 싶다고 [얘들아, 담에 또 여기로 담배피러 와~]라고 말할 수도 없고...
어딘가에서 버려진 꽁초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아이도 그중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니 될 성 부른 아이 하나라도 내가 붙잡아 이끌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다음번에 더 만나게 될 기회가 생긴다 해도 내가 얼굴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벌써 기억이 잘 안나는데...
다들 순수하게 잘 자라주길 바라는 내 맘이 그들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행복한 길로 이끄는 주문이 됬으면 좋겠다.

할 수 없이 마음만이라도 그들에게 보내 보았다.

나야(娜夜)   06.03.19

마음이 정말 따뜻하신분이시군요....전 항상 이런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안좋던데...선도?보다는...체벌?이 먼저 떠오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