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다시 한바탕 큰 일을 치뤘다.
그간 1년간 아이들이 모아온 은총표, 그리고 기쁨잔치.
오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행복'했다.
기쁘고 즐거웠다. 아이들의 사랑을 간만에 온 몸으로 듬뿍 받았다.
3시간 동안 내내 서서 솜사탕 100인분을 만든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을 만큼.
2. 중고등부에 있던 내가 결국 다시 초등부로 돌아온 것은 스스로의 바람 때문이었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웃음과 사랑이 그리웠다. 중고등부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어린 아이들의 사랑은 마치 그분의 사랑 같다. 예수님의 사랑 같다.
자신의 마음을 다 해서 사랑을 해도 받을 것을 미리 계산하지 않는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조숙하고 계산이 빨라서 어른을 이용할 때도 있지만,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온전한 마음을 준다.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준다.
초등부에 있다가 중고등부로, 그러다 다시 초등부로 온 나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뭐라해도 상관없다.
난 내가 기쁜 곳으로 돌아온 것 뿐이니까...
3. 이곳 울트라 다이어리에서는 왠만하면 정말 종교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오늘 필 받았다. 생각나는 데까지 쓰기로 맘 먹었다.
내가 존경하는 우리 막내고모가 얼마전에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넌 어떻게 살고 싶니?"
"고모 전요, 주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럼 주님께서 너한테 어떤 삶을 원하실거 같아?"
"글쎄요... 음...서로 사랑하는 삶...?"
"서로 사랑하는 삶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데?"
"그냥 모든 것을 감싸안을 수 있는...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그냥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어요."
"XX아... 주님께서는 말야, 너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셔."
"하지만 주님을 믿는 자라면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한다 라는 기준이 생기잖아요?"
"그런 기준을 떠나서... 주님께서는 니가 당신을 위해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단다."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XX아. 주님을 위해서 살지 말어.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그거야."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순 없었지만, 순간 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더불어 열심히 기도하고 기쁘게 살라는 말씀도 가슴에 와 닿았다.
주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기 전에 늘 먼저 당신을 찾기를 원한다는 말 뜻도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야한다 라는 기준은 인간의 기준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감히 인간이 판단할 수는 없는 거다.
포도밭의 주인이 일꾼에게 보상을 어떻게 해주느냐는 그분 마음이시다.
'나 주님을 위해 이렇게 살았습니다' 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상에 취하고 속물적인 인간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 만큼은 절대 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죄인이기에 더욱 더 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그 말...
'넌 틀렸어'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괜찮다 괜찮아' 라고 말씀해 주시는 주님을 나는 사랑한다.
감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