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2665 , 2009-10-06 22:07 |
1. 팀원들과 술자리를 가지다.
그리고 꽤 취하다.
지금껏 어떤 상사도 내 꿈을 묻지 않았기에
팀원들에게 꿈을 물었다.
권주찬 과장만이 은퇴후에 "아무도 만들지 못했던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 뭐든 해주고 싶다.
2. 여전히 아무도 내 꿈을 묻지 않았다.
3. 지금의 내 꿈은 작년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는 내 인생을 상사의 펜대에 맡기도 싶지 않고
그래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전문가가 되고 싶고
회사와 조직의 룰에서 자유롭고 싶다.
4. 한 때 다른 꿈이 있었다.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꿈.
재능의 결핍을 깨닫기도 했지만,
보다 현실적인 꿈이 생겼으므로 지나간 꿈인 셈이다.
5. 회사내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기는 했다.
홍보실에서 직원모집을 공고했을때
제시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써내고 최종 면접만 남었다.
그런데, 빌어먹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홍보실은 노조에 맞서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팔수 역할도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왜 그때 노조는 지금처럼 회사와 짝짜꿍인 노조가 아니었을까?)
결국 난 면접장에 가지 않았고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홍보팀장의 전화도 외면했다.
그날, 소주를 마시며 울었던가?
6. 그때 떠오른 것은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갑자기 사대생도 임용고시를 봐야 선생이 될 수 있다는
대학생 길들이기 법을 통과시키고,
당연히 사대생들의 임용고시 반대 투쟁이 거세었을때,
양심의 엄명때문에 끝까지 임용고시 시험장에 갈 수 없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양심을 배반하고 "선생"이 되면
앞으로 결코 "선생님"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울음을 삼켰던 그들은
지금 수퍼마켓 주인으로, 택시기사로, 봉고차 기사를 겸한 동네 보습학원 원장으로
고단한 삶을 산다.
(석권아. 보고 싶다. 태영아. 사랑한다.)
7. 슬프다.
인생의 불가해성이여........................................................................
happysun
0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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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블루_Opened
09.10.07
ㅎㅎ 죄송. |
티아레
09.10.07
홍보실로 가지 않으신 건 잘하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