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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블루_Opened
 어떤 일기를 읽고 문득 떠오른..  
조회: 2703 , 2009-10-05 21:25

그 시절에는 연습장 표지에도 <남남> 이라는 시가 실려있곤 했다.

80년대가 "시의 시대"라고 불리었던 것은 사실 다른 이유이지만
어쨌던 그 때는  시가 지금보다는 생활과  많이 가까웠던것 같다.

그 시절, 러브레터에 조병화의 <남남>과 김초혜의 <사랑굿>까지 동원하였으나
나는 결국 적적한 그녀의 산지기가 되지 못했고
불에 달군 돌은 세월에 식고 말았다.

그러나, 시의 한 구절은 여전히 아음속에 남아있구나 .....................



 남남 27 
                     - 조병화 -


네게 필요한 존재였으면 했다


그 기쁨이였으면 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지닌 슬픔이라든지, 고통이라든지,


번뇌라든지, 일상의 그 아픔을


맑게 닦아낼 수 있는 네 그 음악이였으면 했다


산지기가 산을 지키듯이


적적한 널 지키는 적적한 그 산지기였으면 했다


가지에서 가지로


새에서 새에로


꽃에서 꽃에로


샘에서 샘에로


덤블에서 덤불로


숲에서 숲에로


골짜기에서 골짜기에로


네 가슴의 오솔길에 익숙턴


충실한 네 산지기였으면 했다


그리고 네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에


둥우릴 만들어


내 눈물을 키웠으면 했다


그리고 네 깊은 숲에


보이지 않는 상록의 나무였으면 했다


네게 필요한, 그 마지막이었으면 했다.








사랑굿 91
                        - 김초혜 -

불에 달군
돌을 쥐어주고
데지 말라는
그대


뜻대로 생긴
마음이기에
잊으려
외로이 타도


그대 마음
비출 길 없어
헛된 생각 안고
꿈길로 드니


비워두면
맑은 모습으로
그때 가리라


 

억지웃음   09.10.06


사랑굿이라는 책은 , 형제가 많은 외갓집 책꽃이 한 켠에서 어렴풋이 보았어요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문학소녀 둘째이모와 막내삼촌,
분명히 둘중에 한 분이 구입했을거에요
지금도 여전히 외갓집 책꽃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누렇게 바래서 색읋잃었지만, 후두둑 책장을 넘기다가도 이내 멈추게 하는
그런 싯구절이 있는 거 같아요 .

내생에 봄날   09.10.06

항상 많은 생각과 . 좋은 생각을 갖게해주시는 블루님
정말오랫만에 울다 들렸는데 좋은글 감사해요 -
요즘많이 힘들어서 흔들흔들 거리지만 저두 블루님처럼
곧은 심지와 곧은 받침대가 있었으면 하는생각이듭니다 ..
항상 행복이 함께하길 기도할께요 .

티아레   09.10.07

그래요... 그 시절 서정윤의 <홀로서기>, 김남조의 <서시>,
조병화의 <공존의 이유>, <초상> 같은 시들을 연습장 표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어요.

<남남> 연작시를 쓸 즈음 시인이 고통으로 참혹할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제목만큼이나 아리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시...

후에 시인은 사랑이 지나가면서 남기는 그리움을
"생기로운 일"로 노래하기도 하지요.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늘, 혹은 때때로> 中 )


아직은 그 경지를 잘 모르는 저는
<나에게 있어서> 같은 시를 조용히 되뇌이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련히 저려옵니다.


나에게 있어서
- 조 병 화 -

나에게 있어서
시는 고통스러운 숙명을 사는 기쁨이며
사랑은 고통스러운 목숨을 이어 주는
어쩔 수 없는 숨은 기쁨의 형벌이옵니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서는
꿈은 살아야 하는 먼 고독한 순례의 길이오며
사랑은 고통스러운 그 순례의 길을 이어주는
구걸스러운 따뜻한 숨은 동냥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