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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 스크랩-공무도하 公無渡河  
조회: 2233 , 2009-11-14 12:12
김훈의 신작, 공무도하를 읽다.

기자(문정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거칠고 쓸쓸하다.
장군(이순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거칠고 쓸쓸했던 것처럼...


그(김훈)는 여전히
길 끝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꾸역꾸역 그 길을 가야하는 삶이 허무하고
길 끝의 흐린 등불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노목희의 몸에서 새벽안개 냄새가 났다.  문정수는 조바심쳤
다. 문정수의 조바심이 노목희의 조바심을 일깨웠다. 노목희
의 몸은 깊어서 문정수는 그 끝에 닿을 수 없었다. 길은 멀고
아득했고 저쪽 끝에 흐린 등불이 하나 켜져 있는듯도 했다.

문정수는 그 길속으로 들어갔다. 길은 멀었고, 먼 길이 조여
들어왔다. 문정수는 투항하듯 무너졌다.  노목희가 젖가슴으
로 문정수의 머리를 안았다.  문정수는  새벽안개 냄새 속에
머리를 묻었다. 문정수의 몸속으로 크고 조용한 강이 흐르
는 듯했다.

문정수가 먼저 잠들었고, 노목희는 그의 솜소리를 들으면서
어둠속에서 깨어 있었다. 아침이 가까워올수록 문정수는 더
깊이 잠들어서 숨소리는 길고 깊었다. 문정수의 숨은 몸 깊은
곳의 소리와 냄새를 토해냈다.

                                                 -  130 쪽-


티아레   09.11.15

최근 <공무도하>에 관한 김훈과의 방송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어느 글을 읽다가
눈이 간 대목이 있는데요,

"주어와 동사로만 장편소설을 쓸려고 해요. 그게 언어의 뼈만 가지런히 갖고
쓰려고 하는 것이죠.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인데, 포기할 수도 없어요.
그렇게 되면, 많은 타격이 와요. 매수가 안나가잖아. 천매가 넘어가야 하는데.
몇년이 걸릴텐데. 피로가 가중되고, 생계에 막대한 지장이 오겠죠.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만 갖고 해보려고 해요."

놀라웠어요.
대단한 글쟁이인 그는 그대로의 '이룰 수 없는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더군요.
이건 그의 지독한 자기절제, 자기혐오와도 상관이 있지 싶어요.
쉽게 살기는 영 글러먹은 그런 류의 사람같지요^^
암튼,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