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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블루_Opened
 아들에게  
조회: 2426 , 2010-03-16 01:44

엄마가 연수원에 갔음에도 아빠는 오늘도 늦었다
니가 혼자 잠들었을 시간에 아빠는 노래방에서 "의원님. 학교 다니실때  뺀드 하셨어요?" 이랬다.
(노래는 잘 하더라.)

눈치채고 있니?
올해들어 니가 외교관의 꿈을 접었다는 걸 안후에
아빠가 경제학책(정확히 말하면 경제현상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을 니 책상위에 슬쩍 올려 놓는걸.

진혁아
인생의 절반은 부모에게, 절반은 자식때문에 탕진하게 된다지.
내 기대가 너를 옥죄지 않기를 항상 바란다.
니가 중학교 1학년때 "공고에 가도 좋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라"라고 말해서
니 엄마를 히스테릭하게 만들었던거...여전히 유효하고  진심이다.

아빠 꿈은 말이지..
니가 이해하기 좀 어려울려나.
세계를 해석하는 거였어.
그래서 심리학과나 사학과를 가고 싶었고
내가 해석한 세계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해지는 저자거리에 나앉은 내 삶이 뭐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꿈을 따라 살고 있는건 아니지.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공대를 나왔다.
의대를 못가서 간 공대.

니 할아버지는 아빠의 할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에게 태어 나셨어.
첫째 부인이 먼저 돌아가셨거든.
니 할아버지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가세가 기울었고,
할아버지는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하지 못하셨지.
그런데 배다른 형제들은 이미 의사였단다.

아빠의 운명은 거기서 어긋났다보다.
돌아가신 니 할아버지는 아빠도 의사가 되길 원하셨거든.
추석이나 설에 니 할아버지의 고향에 다녀올때마다
술한잔 드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무 싫었단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도 거길 가지 않는다.

아들아.
니 인생의 영역에 아빠가 침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세상의 모든 아비는 누군가의 아버지로 불리고 싶어한단다.
미안타.

니가 아빠만큼 (사실은 아빠보다 훨씬 더 ) 공부를 잘하는 걸 보면서
니가 學人의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건 뭘까?

혹시 말야..
니가 꼭 가고 싶은 길이 없다면
아빠는 니가 경제학을 전공했으면 좋겠다.

호모이렉투스를 필두로 인간을 정의하는 많은 언설들이 있지만
아빠 생각에 인간은 <경제적 동물>인거같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양태는  경제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게 요새 아빠의 믿음이다.

계절이 지나가는줄 모르고 깊은 생각에 취하고
앞을 보고있되 그 것이 사물이 아니고 내면인 그런 삶이 아름다운 거 같다.

뭐~~니가 원하다면 딴따라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
그게 니 피를 뛰게하고, 행복하게 한다면.

아들아.
넌 중3이고  뭐든지 될 수 있단다.

사랑한다.





AD   10.03.16

두번이나 읽었습니다.
똑같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인데
마지막 문장은 맘을 짠하게 합니다.

클로저   10.03.16

저도 집에서 push를 많이 당해서
내 자식은 자유롭게 키울 거라고 결심하고 있지만
은근히 아들을 낳으면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나봐요.

티아레   10.03.16

블루님.

인생은 길어요.
저는 사실 인생이 너무 대책없이 길어서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꿈을 품거나 추구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단, 꿈의 실현을 꼭 메달획득(학위, 명성, 생계보장 등)과 연관짓지만 않는다면요.

원하는 공부 계속 틈틈히 하시면 좋겠어요.
그동안 쌓아오신 경험과 경력이 공부의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어요.

졸업후 곧바로 입사해서 지금껏 열심히 쉬지 않고 달려오셨잖아요.
지금은 바쁘시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을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블루님이 해석한 세계에 대해 저같은 사람에게도 가르침을
주시구요. 쉽게 잘 풀어서요.
저는 이 세계에 대해 궁금한게 많은 진지한 학생이거든요^^

힘내세요.

프러시안블루_Opened   11.01.19

저는 티아레님이 참 좋아요.ㅎㅎㅎ

억지웃음   10.03.18

요즘 바쁘고 힘든 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제 피를 뛰게하고 행복하게 하는 목표를 위해 마음껏 달리고 있어요~
자식을 걱정하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마음은 다 같은거 같아요
블루님의 진~한 마음이 전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