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2393 , 2010-05-19 01:59 |
중3때 그 도시에 있었다.
긴 휴교후 학교에 갔을때 얼굴을 알지 못하는 친구의 책상에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소총을 든 고등학생이 공중전화 부쓰에서 통화하는 걸 들었다
"엄마. 친구집에서 자고 갈께"
그 형이 통화를 끝낸후 울었던가?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묻던 기억만 있다.
판화가 오윤이나 이철수가 조각도로 세긴 대동세상이 내겐 전혀 추상적이지 않았다.
10일간 열린 해방 공간을 경험했으므로.
선생님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라고 이야기 하면 약속한듯 모두 웃었다.
그 것은 공인된 농담이었다.
그후 군인들이 다스렸던 나라는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월급을 받는 생활을 시작하며
통장을 처음 만들었을때 비밀번호란에 8005 라고 적었다.
5월 어느날, 업무차 경희대를 갔다.
너무나 파란 하늘과 그보다 더 맑은 여학생들의 웃음 소리에 눈물이 날뻔했다.
가위눌렸던 내 젊음이 생각나서.............
역시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가끔 "당신들이 지금 누리는 자유가 그때의 피 덕분이다"라고 말하고 싶을때가 있다.
6.25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하는 아버지 세대처럼.
난 아버지 세대의 그런 이야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르게 살지도 않는다.
부끄러운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나의 정치적 당파성은 오직 몇년에 한번씩 열리는 선거를 통해 표출될 뿐이다.
억지웃음
10.05.21
국사라는 과목을 배울때에는, |
Old Trafford
10.05.21
저 분들때문에 지금 민주화를 외치며 살고 있다는걸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저에게 주신 소중한 투표의 권리를 꼭 행사하려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