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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언어교환   un.
조회: 3400 , 2011-06-11 10:51

여름 방학 동안 영어 공부를 해보겠답시고 언어 교환 사이트에 가입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외국인도 별로 없고, 언어 교환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도 별로 없어서
찾기가 힘들었는데 다행히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과
언어 교환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프로필을 올려 놓으니 한국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미국, 폴란드, 하와이 등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연락을 해왔고,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줬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 아이디를 등록해서 같이 채팅을 했다.
애초에 내가 원했던 것 자체가 free talking 이었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이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야 어느 정도 영어를 많이 배웠고, 단순히 사용할 곳이 필요했던 거였지만
상대는 한국어 자체를 아직 못해서 말그대로 내가 '가르쳐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상대방이 뭔가를 요구할 때까지 기다리며 그냥 영어로 계속 말해댔다.
솔직히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고, 상대방이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느니 그런 말을
하지 않으니 계속 영어로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락을 해온 것 자체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는 뜻이었는데.

결국 그 외국인이 화가 나고 말았다. 이런 사람이 나 한 사람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인들과 만나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으나 정작 그들 중 아무도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는 시간 낭비만 하고, 한국어는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나도 똑같은 것 같다고, 자기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줄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사실 어떤 의미에선 맞는 얘기다. 나는 내가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것처럼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상태에서 한국어로 free talking 을 하고 영어로 free talking을 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지
내가 한국어를 가르쳐 줘야 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가 나는 영어로 말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통화로.
그래서 못하겠다고 말할까 생각했으나, 그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무책임하게
굴기는 싫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떄는, 나를 포함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지구화 시대를 살아갈 준비와 교육이 아직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채, 기술과 경제만 계속해서 발전하고
물질적인 것으로만 선진국 반열에 올라가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과 정신적인 수준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자체가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기술과 경제의 진보에 걸맞게 발전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인간 정신의 발달 속도에 비해 너무 빨리 발전했기 때문에.

그래서 책임지고 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외국인이라 그런지
굉장히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나는 꽤나 상처를 받아서 지금은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마치 아빠한테 혼난 느낌이다. 그냥 단순히 그의 성격인 것인지, 아니면 서구인의 특징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매섭게 자기 주장을 했다. 한국 사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그리고 들었다면 상처를
받았을. 솔직히 조금 상처를 받았다. 나는 그렇게 나쁜 의도가 아니었는데. 마치 내가 자기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지도 않을 거면서 영어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 했다. 지금까지 수 십 명의 한국인
들에게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만약 내 태도가 그들과 같았다면 더욱 그럴 만 하다.
그래도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직 우리와 너무 달라서 나는 약간 상처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 나 기분 나빠. 그만 둘래, 는 아니다.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사과를 하고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겠다. 내년에 한국에 공부하러 온다는데,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면
공부를 잘 할 수 있겠지.

솔직히 이렇게 그 아이를 원망하고 있는 것도 지금 내 죄책감 때문이다. 방어 기제랄까.
내가 잘못한 게 명백하니까, 그래서 죄책감이 드니까 조금이라도 남 탓을 하고 싶은 것이다.
충분히 느끼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해결될 감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잘못한 것은 너무 많이 언어 교환 파트너를 만들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단순히
free talking partner의 의미로 생각했기 떄문에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족족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줘야 할' 의무가 있다. 나에게 화가 난 외국인을 포함해서 4명 정도
되는데, 나중에 친구가 된 2명에게 사과를 하고 2명에게만 연락을 해야겠다.

화가 난 외국인에게는 오기로라도 꼭 가르칠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폴란드 인이라서 나중에 폴란드어도
배우고 싶기 떄문에 언어 교환 파트너로 남고 싶다. 무엇보다도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일단 친구가 되고 언어 교환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 생각은 좀 다른가 보다. 언어 교환 파트너가 먼저 되고 나서 친구가 되는 건가보다. 신기하기도 하고, 아직 적응이 되지 않기도 하고. 그러나 이번 경험으로 한국인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느끼게 되었다. 분명 나중이 되면 나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 대박
근데 정말 뻘쭘해서 그 외국인에게 다시 연락하기가 꺼려지지만,
아니 돼-
오기로라도 한국어를 잘 하게 만들고 말겠어ㅋㅋㅋㅋ

억지웃음   11.06.12

저도 이번 방학때는 회화에 도전해 보려구요~!!
아직 3세수준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이제 시작이네요
미니미님의 실력이 부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