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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블루_Opened
 벌새 - humming bird  
조회: 3933 , 2011-08-11 11:00








지하철 안전도어에  적힌  좋은 시를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어이없게도  영화 <아비정전>의 "발없는 새"였다.
故 장국영이 "세상에 발없는 새가 있다더군 ~~"어쩌고 하며 우울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아마 "결코 지면에 앉는 일이 없네" 라는 싯구절이 그런 이미지를 환기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매우 격정적으로 자기 삶의 자세를 선언하는 시다.
시인은 "결코 지면에 앉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 것을 선언하는데,
시인이 원하는 삶은 '꽃가루를 지천으로 묻히"며 사는 삶이다.

아마 그 꽃가루는 자신을 희열에 빠지게 하는 어떤 높은 정신 세계일테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수만개의 눈을 크게" 떠야 함을 시인은 안다

당연히  시인이 가고자 하는 길은 지상에 있지 않다.
그 길은 세상의 폭포 위에 있고,
심지어 비바람 천둥,  짙푸른 여름 조차도 날아가는 벌새의 발밑에서 북작거린다

내가 아는,  자기 선언 시중 가장 수일한 시는 조정권의 산정묘지 였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라고 선언하는...

조정권 시인이 자기 선언을 위해 얼음을 뒤집어 쓴 산정(山頂)을 불러왔듯이
박미산 시인은 팽팽한 긴장으로 하늘을 가르는 벌새의 이미지를 불러왔는데 
그 작업은 매우 성공적이다.


벌새의 이미지에 홀려  검색을  해보니 시인이 왜 벌새에게 매료되었는지 알겠다
브라질에서는 벌새를 '꽃과 입 맞추는 자'라고 한다는데  시인은 그 벌새와 입을 맞췄나보다.



벌새는 1초에 50-80번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날개를 젓기 때문에 항상 벌새가 날 때면 윙윙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 때문에 벌새를 영어로는 ‘hummingbird’(윙윙대는 새) 라고 부른다.

이 작은 새는 평소에 시속 90 km로 날아다니며, 특별히 밑으로 낙하 할 때는 시속 100 km의 엄청난
속도로 비행할 수 있다.벌새가 이렇게 빨리 날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조류학자인 요한 몰튼 박사는 만약 사람이 벌새와 같이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하루에 1300개의 햄버거를
먹어야 하며 심장은 일 분에 1260번 뛰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체온은 385 ℃로 올라가 우리의 몸은 다 타
버리고 말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자료실에 올려져있는 명지대 이웅상 교수의 글 일부 --

 



짧은 생을 불같이 살다가는 이 격정적인 새는 고작 1년을 산다. 가둬두면 살지 못한다. 먹잇감으로 잡힌
극한 상황에서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몇 초 만에 죽는다.

신비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아메리카 벌새중 몇 종류는 꽃을 찾아 3200㎞를 이주한다. 한 번의 비행으로
멕시코만을 건너 800㎞를 날아간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이 작은 새가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날 수 있을까?

과학은 아직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했다. 자유가 구속받지 않았을 때 나오는 불가해한 생명의 힘으로
풀기도 한다.   

      - 한겨레 2009년 01월 02일자,   한겨레 칼럼 유레카 벌새/함석진 글 일부 -



티아레   11.08.11

"자기를 잘 견뎌내는 일 하나만 잘해도 아주 잘하는 것이다"

<산정묘지>에 대해 문태준 시인이 쓴 시평에서 봤는데, 평소에 두사람이 만나면
조정권 시인이 하는 말이래요.

프러시안블루_Opened   11.08.11

평론가 유종호 선생이 시집, 산정묘지 뒤편에 해설을 썼는데,
제목이 <견인주의적 상상력의 시> 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견의주의(堅忍主義)란 욕정이나 욕망 따위를 의지의 힘으로 굳게 참고 견디어 억제하려는 도덕적ㆍ종교적 태도군요.

티아레님
저는 요새 어떤 생각을 많이 하냐면요....
지금껏 의지의 힘으로 참고 견디고 억제하며 살아오지 않은게 한탄스러운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오지 못한게 한탄스러워요.

<그리스인 조르바>같은 삶이 진짜 삶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티아레   11.08.12

- 철학자 헤겔이 말했다.

"인격이란 높은 것과 아주 낮은 것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인격의 높이란 모순을 갖고 견디는 일이다."

말이 안되는 일,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되는 상황을 얼마나 잘 견디느냐에 따라 인격이 높다 낮다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전에 누군가가 어느 책 내용을 발췌해서 올린 투명글을 읽다가 옮겨 적어놓은 부분인데요. 헤겔의 말 중 "모순을 갖고 견디는 일"에서의 모순의 의미는 자신이 처해있는 외부의 모순된 상황 뿐만 아니라, 높은 것과 아주 낮은 것이 하나가 된 자기 내면의 모순도 포함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말한 "미추와 선악이 잔뜩 뒤섞여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있는, 생의 본래적 특성으로서의 잡스러움"이라는 표현도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요. 어쨌거나 재미있는 건 헤겔에 의하면, 갖고 견디고 있는 모순, 다시말해 높은 것과 아주 낮은 것의 낙차가 크면 클수록, 인격의 높이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는 건데요. 이런 맥락에서 <산정묘지>의 시인의 말이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블루님은 여러모로 모범생다워요^^
그런 한탄도 중년에 이른 모범생들이 흔히 토로하는 유형의 하나 아닌가요ㅎ

누구 말대로 유전자 부터가 다른 건지도 모를 일이죠^^;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삶에 이미 정해진 부분들도 얼마쯤은(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있는 것 같구요. 본인의 선택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는..
그러니 너무 한스러워마시길. 나에겐 내 삶이 진짜인 거니까.

티아레   11.09.02

오늘 오후 산책길에 벌새 한마리를 보았답니다^^
작년에 한두번 보고 올해는 처음인데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바라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