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더 휴학하게 되었다.
조금은 슬픈 일이지만
차분히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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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조금은 가닥이 잡혀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이것을 깨닫고 내 내면에 자리잡게 하니
인생이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다.
아주 조금.
아니아니
인생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돈하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이것을 알기 전에는
상실의 고통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괴로워했고
잃어야 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졌다.
잃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을햇살처럼
마음이 차분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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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인정해야겠다.
그동안 엄마가 너무너무 미웠다.
나보다 정신연령이 어리고 철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조금만 더 강했고 깨어있었고 똑똑했더라면
나는 아버지로부터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혼한 후 엄마를 미워했다.
강해지라고
나보다 크라고
그래서 나를 좀 감싸달라고
그런 메세지를 끊임없이 보내면서
그렇지 않은 엄마를 마음 속에서 밀어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내가 아무리 그래봤자
어머니는 변하지 않는다
4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온 분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바꿀 수는 없다.
이 간단 명료한 사실은
이미 고등학생 때 깨달았던 것인데,
잠시 잊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아침마다 동생에게 짜증을 내고 상욕을 하는 어머니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한창 자라고 있고 민감할 나이인 동생인데
그것도 사람이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에
온갖 짜증을 다 내고 욕을 해댔다.
자고 있던 나마저도 깨우고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분노하게 만들만큼의
'히스테리'였다.
동생이 불쌍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엄마에게 많이 뭐라고도 해봤다.
그러지 말라고. 왜 그렇게 짜증을 내냐고.
그것도 아침부터. 교육상 좋지 않다고.
엄마는 딱 잘라 말했다.
시끄럽다고. 내 방식이라고.
그 때 깨달았다.
나와 엄마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고.
내가 아무리 엄마를 바꾸려 노력해도
엄마는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그 문제에 관해서는
엄마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먼저 일어나 있다가
동생이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면
어깨를 토닥거리며
'네가 이해해라. 엄마가 원래 저러지 않느냐'고 위로하고
'학교 잘 다녀오라'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따뜻하게 한 마디 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동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행동은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나고 생각해보니
엄마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것을 알 것도 같았다.
그게 옳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였구나,'하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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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께서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부모님이 네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네 부모이니 네가 이해하고 안고 가야한다'고.
그 말씀을 이해할 것도 같다.
내가 아무리 고함을 치고
몸부림을 쳐도
이미 반여생을 살아온 엄마와 아빠를 바꿀 수는 없다.
그저 그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을 바꿔야만 하는 것이다.
일단 아빠.
이 사람은 아빠라고 생각하지 않고 싶다.
나를 낳아주었기는 했지만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가해자인 셈이다.
일절의 연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것은 오로지 나의 행복이다.
가해자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언젠가는 꼭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엄마.
엄마를 포용하고 싶다.
엄마는 어리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부모로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한 인간으로서 부족한 면도 많다.
그러나
나의 엄마이다.
나를 낳아주셨고
나를 길러주셨다.
물론 공격적인 아버지로부터 나를 지켜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렸을 때는
나에게 밥을 지어주고 씻겨주고
든든한 엄마가 되어주셨다.
물론 이혼한 후에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에게 자꾸만 쓰러져와서 나를 힘들게 하기는 하셨다.
그러나 적어도 그 전에는
엄마는 나를 위해서 많은 것들을 해주셨다.
중학생 때는 날마다 학교에 태워다주셨다.
내 가방을 빨아주셨고 내 신발, 실내화를 빨아 주셨다.
시험기간에는 새벽 5시에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용돈도 주셨고.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에 있는 나를 위해
빨래도 해다 주시고
맛 있는 것도 사다주시고 그러셨다.
집에 놓고 온 것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기숙사로 찾아와주셨다.
김치부침개도 잔뜩 해주시면 친구들과 나눠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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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엄마는
조금 부족할지언정
'엄마'셨다.
그런데 나는 잠시 흔들리는 엄마를
이해해주지 못했다.
'내가 훨씬 더 많이 힘들었다'는
'피해의식'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당신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는데
겨우 이것 때문에 휘청거리면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느냐,
라는 원망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위기의 순간을 잘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엄마처럼 충격받고 휘청거리는 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을 겪어왔고
그것에 내성이 생겨서 이제 웬만한 일에는 휘청대지 않기에
엄마를 나의 기준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엄마는 평범한 사람이다.
한 남자에게 버림받고 배신 당하고
졸지에 가장이 된 것은
결코 한 사람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엄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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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름대로 충실하게 살아왔다.
열심히 일했고 집안일을 하셨고
나와 동생을 돌보셨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으셨다.
자식들을 따뜻하게 안아준 적도 사랑한다고 말해준 적도 없었다.
교육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엄마는 완전히 무지했다.
하지만 그런데로
엄마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사주고
우리를 보살펴주시는 것으로
우리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셨다.
사람이 무뚝뚝할 수도 있고 애정표현에 서툴 수도 있다.
그리고 교육을 제대로 못받고 일만 해야 했던 시대를 살아온 만큼
교육에 무지할 수도 있다.
그러지 않는 것이 더 좋고
자식의 교육에 힘써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우리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그게 우리 엄마의 한계다.
하지만 엄마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아버지같은 사람을 만나 속을 많이 썩었다.
그리고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하셨다.
지금도 자식을 둘이나 끼고 살면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름대로 엄마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도
절대 가볍지 않다.
다만 내가
내가 지나치게 무거울 뿐이다.
보통의 기준에서 보자면
엄마도 지금 충분히 힘든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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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용서해야지.
물론 풀어야 할 감정의 응어리는 풀어야 한다.
어린 시절
왜 나를 아버지로부터 분리시키지 않았는지
왜 아버지가 나를 성폭행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이혼하지 않았는지
나보다 아버지가 중요했는지.
왜 내가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몸은 괜찮은지 다친 곳은 없는 지 살펴보지도 않고
병원에도 데리고 가지 않았는지.
나한테 그렇게 무관심했던 것인지.
왜 나를 심리 상담소 같은 아동보호소에 데려다주지 않은 건지.
왜 나에게 한 번도 괜찮으냐고 물어봐주지 않았는지.
이런 것은 분명히 풀어야 한다.
그러나 엄마와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어머니는 아직 나를 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내게 진작에 말하지 않았느냐'는 엄마의 말 한 마디에
나는 깊이 상처받는다.
엄마와 대화를 하려면 나도 엄마도 먼저 준비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준비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뤄지는 것이 맞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지금은 일요일을 빼고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상담을 받기가 여의치가 않다.
상담소는 평일에만 운영을 하니까.
이것도 상담소의 한계라면 한계인 것 같다.
아마도 분명히 나처럼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을 시간이 없어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는 지위가 낮은 여성들이
평일에 쉬는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평일에 쉬지 않으면 상담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 다시 상담을 받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참 안타깝다.
그렇다고 사설 상담소를 찾자니 돈이 없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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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중요한 것은
나는 이제 소용돌이 치고 요동치는 분노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부풀려지고
대상을 잘못 겨냥하고 있는 분노는 바로잡고
풀어야 할 것들은 풀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내게 가시밭인 이상
나는 편안하게 누군가에게 안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