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버전
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화나 열받아   deux.
조회: 2743 , 2012-10-26 22:54



진짜 버티기 힘들다.
그냥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으면 좋겠다.

빚이라도 없었으면 좋으련만.
한 달에 백 만 원을 감당하는 게 
나로서는 참 힘들다.

물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힘들지 않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 말고도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런데 또 내가 너무 강박적인 것 같기도 하다.
꼭 해야 하는 걸까?
해야 한다고 해도 이렇게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이 생각에만 사로 잡혀 있어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원래 한 가지 일을 끝내지 못하면
다른 일에는 잘 집중을 못 하는 성격이다.
하나를 끝내놓고 다른 일을 시작하고 마는 성격인데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 같다.
심리 치료를 다 끝내지 않고서는 다음 삶은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
.


답답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 또 죽지도 않고 일어나서 하루가 시작됐구나.'
로 시작한다.
약국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로 싫다.
정말로 싫은데 그걸 버틸만한 정신적 힘이 내게는 지금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마음의 에너지가 남아 있질 않다.


힘들다.
진심으로 힘들고 답답하다.
이 지옥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다.
하루 종일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일을 한다.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서.

이게 사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내 성격이 문제인 걸까? 
다른 사람들은 안 이러나? 


아 그런데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럴 만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답답한 건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나는 네가 답답하다느니
너는 어린 것 같다느니
성격을 고쳐야 할 것 같다느니 지껄인다.
조금 더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있겠다느니.

나로서는 지금 하루 하루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체가 고역인데.
겨우겨우 버티고 살아가고 있는 건데.
니들이 아버지한테 성폭행 당해봤어? 
아버지라는 사람이랑 섹스를 해봤냐고.
아버지한테 좋아한다고 고백 받아봤어? 
아버지한테 죽으란 소리 들으면서 맞아봤어? 

내가 겪은 일들 중 하나라도 겪어 보고 지금 나한테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거냐고, 응? 
제발 말이나 하지 말아줘.
나는 너무 힘들다고 지금.
나한테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아 씨발 다 잊고 살 수도 있는데
나는 다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어.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여기에 집착하는 지 모르겠어.
사실 잊고 살 ‹š는 마음이 정말 편했거든? 
물론 잊고 살 때도 틈만 나면 우울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매 순간이 괴롭지는 않았어.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내 자신을 괴롭히는 건
해결하고 지나가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야.
그래야 내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서야.

아버지라는 사람과의 관계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해서 장인 어른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 아이에게 할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런 병적인 관계를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
나의 병든 마음을 내 남편과 아이에게 짐지우고 싶지 않았어.
나는 문제가 있을 거야.
나한테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문제 투성이일 수밖에 없어.


뼛속까지 ››은 사람과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았는데
내가 정상일 리가 없잖아.
분명히 병들어 있을 거라고.
죽을 힘들 다 해서
안간힘을 다해서 영혼이 물드는 건 막았지만
몸과 뇌에 새겨진 건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그것들을 다 알고 싶어.
그 새끼가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하나 다 알아서 하나하나 다 바로잡고 싶다고.
다시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서
그 상황에서 하나하나 다 고치고 싶어.
그래서 그 새끼랑 같이 살지 않았을 때처럼
그렇게 되고 싶어.
그렇게 내 속을 비워내고 싶고
깨끗해지고 싶어.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지금의 내가 싫어.
정말 싫어.
진심으로 싫어.
더러워.
병들었어.
정상일 리가 없어, 이런 내가.
그런 일을 겪고도 정상일 리가 없지.
그건 말도 안 돼.
그러니까 나는 꼭 치료를 받아야 돼.
정신 분석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르겠어.
최면 치료? 이런 것도 받아야 돼.
그래서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샅샅이 떠올려서
다 바로 잡아야 돼.
그래야 된다니까?
아니라고 하지마.
그렇지 않으면 나는 깨끗해질 수가 없어.
안 그러면 나는 더럽다고.
나는 더럽게 키워졌다고.


그런 병든 새끼가 키운 내가
제대로 컸을 리가 없어.
내 몸과 마음 속은 다 썩어 문드러졌을 거야. 



.
.




지금의 내 모습이 싫다.
부끄럽다.
특히 남자친구 보기에 부끄럽다.
남자친구는 얼마 전까지 보던
쾌활하고 밝고 적극적이고 깨끗하던 내 모습을 좋아했을 텐데.
이제는 내향적이고 어둡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
싫어할 것 같아.
정말 싫다.
얘기하고 싶지 않아.
드러내고 싶지 않아, 감추고 싶어.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정말 싫어.
어서 벗어나고 싶어.
빨리 벗어나고 싶어.
어서 복학해서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다.
그러려면 네 달이나 남았어.
아득해.


싫다.
싫어.


누가 이런 상황들을 모두 다 해결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다 바로잡아 줬으면 좋겠어.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다 엉망이야.
다 바로잡아야 돼.
지금 이대로는 안 돼.



.
.


부끄러워.
이렇게 일 끝나고 약속 한 번 없이
늘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일상이 부끄러워.
친하게 어울려 노는 사람들도 없고
나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나를 찾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지금의 일상이
정말 부끄럽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주말에는 늘 시간이 널널하고
평일 저녁에도 약속도 없고.
그런 일상이 싫어.
나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데.
그렇게 홀가분한 기분으로 살고 싶은데.
기분이 안 좋아서 약속도 별로 나가고 싶지 않고
만들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그런 걸 남자친구는 내가 친구가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눈치보이고 수치스러워.
나는 왜 일상이 이 모양일까.

나는 문제투성이야.
다 문제 투성이라고.
다 바로잡아야 돼. 다 고쳐야 된다니까? 


다 어린 시절에 나한테 일어났던 일 때문에 그런 거야.
그것 때문에 그런 거니까 그걸 제대로 바로잡지 않고서는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굴러갈 수 없어.

어서 그 얘기를 상담 선생님한테 제대로 털어놓고
그 새끼한테 화내는 시간도 가져보고
사이코 드라마라든지 그런 행동 기법 심리 치료도 받아보고
다 해야 된다니까? 
그걸 하지 않고서는 나아질 수가 없어.
나는 그 과정이 없고서야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니까? 
어서 해야 돼.
어서 하고 싶어.
어서 하게 해줘.





.
.


답답해.
벗어나게 해줘. 
제발.



나는 지금이 싫어.
지금의 상황도
지금의 나도 다 싫어.
싫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