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에게 미안하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니 이게 무슨 병신같은 느낌이지?
그런데 이걸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냥 미안하다.
한 없이 미안하다.
비슷한 감정을 꼽자면
어린 시절에 엄마랑 동생한테 느꼈던 미안함이랑 비슷한 것 같다.
미안해.
나만 참으면 되는데
괜히 사실을 이야기해서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어서 미안해.
이런 감정?
사실은 이게 말도 안 돼는 감정이란 걸 아는데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또 다른 내가 눈을 너무 또렷하게 뜨고 있어도 힘든 것 같다.
이 눈을 감고 싶다.
나도 내 힘든 만큼 힘들고 싶은데
또 하나의 눈은 내가 그렇게 힘들었을 때
상처받을 주변 사람들을 바라본다.
전체 상황을 조명한다.
그러면 나는 그 눈이 비춘 미래를 보면서
마음껏 힘들어하지를 못한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내가 막는 상황이다.
도대체 이 눈은 왜 이렇게
정신이 말짱한 거야.
응?
좀 감겨라.
나도 좀 안하무인이 돼 보자.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그냥 마음껏 좀 힘들어보자.
상처도 좀 줘 보고
정신 없이 투정도 부려보고.
미운만큼 미워도 해 보고.
어제 잠깐 이 눈이 감기긴 했다.
엄마랑 싸웠는데
동생 앞에서 엉엉 울었다.
그 눈이 감긴 것이다.
그 눈을 좀 감고 싶은데.
그 눈이 좀 감기면 내가 감정 표현을 하고
투정도 부리고 어리광도 부리고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좀 표출을 할 것 같은데.
망할 그 또 다른 눈이 나를 너무
너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
이 눈을 감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상담 선생님한테 좀 물어볼까?
이 눈이 뭔지.
나는 왜 이 눈이 이렇게 말똥말똥하게 켜져 있는 건지.
감을 수는 없는 지.
이거다.
이건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이런 결론조차도
그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내린 게 아니야.
그 눈이 내린 거야.
그 눈이 나를 보고 있다.
소름 끼친다.
그 눈은 나인가?
또 다른 나인가?
너는 누구니?
누구길래 그렇게 똑똑하고 철저하니?
너는 완벽주의자일 거야.
그래서 내가 힘들지 못하게
무너지지 못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거야.
그런데 너는 왜 주변은 잘 보면서
나는 잘 못 보니?
주변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힘든 걸
너는 못 보니?
너는 누구니?
너는 나니?
아니면 내가 아니니?
응?
.
.
나면 나랑 같이 살자.
그냥 내 안으로 들어와.
그래서 우리
'하나'가 되어 살자.
나는 너랑 둘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내가 들어갈까?
네가 들어올래?
.
.
그래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 안다.
네가 나를 그 더러운 상황 속에서 살아남게 해주었다.
안다.
근데
이제 됐다.
이제 안 그래도 된다.
이제 아무도 나를 안 괴롭힌다.
이제 내 주변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만 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편하게 눈 감아라.
내가 안아줄게.
수고했다.
우리 이제 좀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