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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끈   deux.
조회: 2509 , 2012-11-19 22:01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애원한다.
제발 잊지 말라고.
너에게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 있다고.
해결하고 넘어가 달라고.

사실 다른 부차적인 문제들은
그리 대단치 않을 지도 모른다.

이따금 겉잡을 수 없는 우울에 빠진다든지
전화 통화를 잘 못한다든지
남을 잘 미워하지 못한다든지
내 주장을 잘 하지 못한다든지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는 문제들이다.
아니 문제조차 아니다.
그냥,
나의 성격이다.


하지만
나로 하여금 
무언가가 계속해서
제발 놓치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있는 단 한 가지.

성폭행, 
그 기억들을 제발 잊지 말라고.
알아달라고
풀어달라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
.



그래 
알았어.
나도 노력하고 있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뭘 원하니.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표현하는 것.
내가 당했던 일들
나에게 있었던 일들
그래서 내가 느꼈던 괴로운 느낌,
증오, 분노들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
울어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화도 내보는 것.

그리고 
그 새끼에게
이야기하는 것.
너는 나쁜 새끼다
네가 한 짓은 나쁜 짓이다.
나는 너 때문에 힘든 인생을 살았고
너는 나에게 잘못한 것이다,
라고 
눈 똑바로 뜨고
그 새끼의 정면에서
그 새끼가 듣도록
또박또박 이야기해주는 것.




그리하여
이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일부분이 되어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끔
그 온도를 낮춰주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다.



제발 그걸 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이유로
포기하지는 말아달라고
그렇게 나를 보채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온갖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게끔 만들고
그걸 해결하지 않을 수 없게끔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
.



알았다.
포기하지 않을게.
그걸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고
지금 당장 편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게.
끝까지 잡고 있을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자.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우리가 원하는 것만 하자.
우리 생각만 하자.

응응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