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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것들에 대해서.   생의 한가운데
조회: 1659 , 2013-01-04 17:35

지나간 나를 돌아보며- 달라진 것들에 대해서.




오랜 시간동안 나의 심리를 좌지우지 했었던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
어쩌면 나의 모든 행복의 감정을 짓누르는 듯 했었던, 의심없이 그렇게 여겨왔던,
내 불행한 감정의 원천이었던 '아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아지겠지, 했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빠질수도 있구나, 실망하고 주저앉아버리기도 했었지.
우리 가족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나 애정도 없어 보였던 철없는 그를
밀어내고 부정하고 미워하고 증오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본다면 믿지 못할만큼 지금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아직까지는, 함께 밥을 먹는다거나 대화를 하는 것에 거리낌을 느끼곤 있지만
예전만큼 그의 존재가 나를 괴롭지는 않는 것 같다.
존재자체만으로,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도 치를 떨게 싫었던,
가슴속이 끓다못해 분노로 터지곤 했던 내 감정에도 점점 고요가 찾아오는 것 같다.
용암처럼 터져오르는 부정으로 가득찼던 내 마음에,
비가 내려준다고 해서 봄이 찾아올까 싶었었는데.
어느덧 내 의식 저편에서, 언젠가는 찾아올 봄날을 어렴풋이 기다리고 있다.
아빠와의 관계는 아직까지도 오랜 시간을 두고 풀어나가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자그마한 희망이 생겼다는 것', 가장 크게 달라진 내 모습이다.




소용돌이 치는 머리속 단어들을 배설하고 싶어했던 욕구가 많이 사라졌다.
십대때는 늘 무언가를 쓰고 또 썼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 단어들을 문장으로 쓰고 기록했다.
쓰고 남기지 않으면 다 잃어버릴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이제는 쓰고 싶은 소재가 많이 없어졌다.
분노하는 마음이 사그라들면서 내 머리속도 동요를 점점 멈춰가는 것 같다.
어쩌면 '사고의 정지' 같은 것일 수도.
그러나 마음만은 편해졌다.
이것과 연결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음악에 대한 집착도 많이 사라졌다.
음악으로 머리속을 비워내려는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 탓인 것 같다.
감상만을 위해서 듣는다기 보다는 자가치유를 위한 목적이 더 컸었나 보다.



글씨체가 많이 변했다.
결과적으로는 많이 못나졌다.
글씨를 잘 쓰지 않게 되고, 쓸일이 없어지다보니까, 쓸일을 만들지를 않다보니까.
못나진 글씨체를 보면 왠지 내 정지해버린 사고가 반영되는 기분, 좋지만은 않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따뜻한 감정이 들어올 자리가 내 마음속에도 생겨났다.
시작된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늘 버겁고 두려웠던 내가
어느덧 그 두려움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나는 항상 지레 겁부터 먹었었다.
남에게 상처를 받기 싫어 먼저 밀어내고 상처를 입혔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서는, 내 마음대로 정해버린 선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 내 허튼 필사적 노력이 늘 나를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게 했었다.
어리석게도 아직까지 그런 내 일면을 버리지 못해 부둥켜안고 살아가곤 있지만,
'많이 나아졌다.'
나아졌고, 나아질거라는 그런 희망, 이것도 내 달라진 모습이다.




몸무게가 조금 줄었다.
밤에 배고프다고 먹지만 않으면 더 줄일 수 있을텐데
이게 제일 어렵다.




대학 생활이 끝났다.
이제 학생 신분의 내 시절과는 이별이다.
어린날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내 모습을 기대한다.
비록 취업전부터 빚을 가진 학자금 빚쟁이지만
이것 또한 언젠가는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안정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다.'




나에게
내 삶에대한 이런저런 작은 희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