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외로움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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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공복의 상태는 뭔가 위협적인 걸까. 배가 차면 어떤 안정감이 느껴진다. . . 불안해질 때면 어두운 밤에 아무도 없는 정글 속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쉬워지는 것 같다. 그 상황에서 가장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나는 행동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가장 필수적이고 시급한 욕구를 먼저 느낄 것이며 만약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시에는 불안과 공포, 가 엄습할 것이다. 그 불안과 공포, 는 나를 빨리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불쾌할 것이다. . . 공복 상태는 위험하다. 위험이 닥쳤을 때 달리거나 싸우려거든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기간 걸어야 하거나 은신처를 구축하거나 좋지 않은 환경에서 버텨내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먹어야만 한다. 혼자 역시 위험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 상대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상대면 더욱 좋다.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은 곁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 . 끼워맞추기인가, 아니면 대충 맞는 설명인가.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면 내가 설명이 되기는 하는데. . . 뭐 어쨌든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불안하다고 해서 나는 굳이 뭘 먹지를 않아도 된다. 집에 있는 한 굶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으니까. 식욕이 아닌 건 확실하다. 인형을 안고 있는 것처럼 그저 배가 꽉 찬 느낌을 좇는 것 같다. 그럴 땐 다른 방법으로 안정감을 찾도록 해보자. 이 시간에 뭔가를 먹는다는 건 그다지 몸에 좋지도 않을 뿐더러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다. 더부룩 하고. 그리고 누군가가 곁에 없어서 불안한 건, 언제나 내 곁에 누군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그건 당연하다. 내 곁을 지켜줄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건 확실하니까. 일단 부모부터 그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니까.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믿지 않는다. 동생은 더더욱. 그렇다면 내가 항상 믿을 만한 사람을 만들어놓으면 된다. . . 공복 상태가 불안하면 다른 방식으로 불안을 위로하려고 해보자. 인형을 안는다든지, 다른 곳으로 주위를 돌리기. 그리고 내 곁에 항상 있어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찾자. 이미 주변에 있을 지도 모른다.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들. 나를 지켜줄 사람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생명체로서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불안과 외로움의 극복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사람은 죽음의 냄새를 맡으면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죽음의 냄새가 나는 요소들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게 하기 위해 처벌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혼자라면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위험에는 공포를 느끼게 하고 상처에는 경계를 느끼게 한다. . . 나는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감과 경계심이 꽤나 크다. '충분히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지 못한'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다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세상을 경계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리고 그 직접 원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 . 객관적으로 살폈을 때, 나에게 지금 실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위험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다시는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거나 아버지에게 맞는 일, 협박 당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 위험 요소는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이 이상 상처 받을 일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이 내가 받은 최고의 상처일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이 이상의 위험은 없을 것이며 이 이상 나에게 위협이 되는 상대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의 나의 삶은 지난 나의 삶보다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내가 앞으로 만나는 남자들은 나에게 똑같은 일을 저지를 사람들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성장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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