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권   six/sept.
  hit : 2500 , 2016-02-27 21:58 (토)

상대와 나,
로 구성된 1:1의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조종당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욕구에 이용당하지 않고,

나의 욕구를 관철시키고
선을 긋고
나 자신을 지키는 '통제권'이 내게도 있음을,
그리고 내가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관계를 무서워했을까.
뒤돌아 보면,
통제력을 가졌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내게도 있었지만,
내가 맺은 최초의 관계에서
내게는 단 1만큼의 통제권도 없었다.

모든 것은 아빠의 욕구와 감정에 의한 것이었을 뿐.
그러나 관계에는 나의 감정과 욕구 또한 존재한다.
그 경계선을 지키지 않고 나를 착취한 아버지의 행태는
명백히 학대이며 다분히 범죄다.


.
.

이제는 관계에 조심스럽게 한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아무런 조심성 없이 관계를 시작할 만큼은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의 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대방이 원하더라도 내가 싫다면 하지 않을 수 있고
상대방이 원치 않더라도 내가 원한다면 요청해볼 수 있고,
꼭 필요한 것이라면 들어주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욕구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구를 먼저 느끼고, 그것을 상대에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내가 치킨을 먹고 싶으면 먹자고 하는 거고
네가 새벽 2시 이후에는 전화를 안 했으면 좋겠다면
그렇게 얘기하면 된다.
왜냐하면 난 자야 하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아줬음 하니까.

네가 지금 내 몸을 만지고 싶어도
내가 책을 읽어야 한다면 '지금은 싫어'라고 할 수 있는 거고,

네가 아무런 욕구가 없어도
나 좀 안아줄래?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관계 안에서의 통제권.

그동안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그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통제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고의로 그랬든, 그렇지 않든,
질질 끌려가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관계 역시 싫었다.
어차피 남의 욕구에 맞춰줘야하는 그 '일'을 
내가 왜 시작해야 하는가?

연애란 무엇인가?
내가 좋다는 사람이 내가 보고 싶다고 할 때 얼굴 보여주고
나와 섹스하고 싶다고 할 때 해주고
연락을 바라면 해줘야 하고
서운한 게 있으면 들어줘야 하는 
그런 귀찮고 피곤한 것,
내게는 그랬다.


그러니 귀찮고 싫고 징그러울 수밖에.


.
.


그냥 요즘 인간관계가 편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애 생각만 하면 질색하는 나를 보면서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다.

자꾸 꿈에 나오는 오빠가 있는데도
굳이 단점을 들춰가면서 
아니야, 안 좋아해, 안 좋아해-
주문을 외고 있고

친구가 달달하게 연애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좋을까?'라는
염세적인 질문을 자꾸 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로맨스만 나오면
설레서 죽으려고 하고.

무슨 이중적인 태도인가,
나는 그래서 연애를 하고 싶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
.

결론은
하고 싶다거나
하지 않고 싶다거나의 단계가 아니다.
나는 연애가 무서운 것이다.

어쩌면 지난 두 번의 연애가
가벼운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첫번째 연애는
성폭행과 관련한 트라우마와 정신적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했었던 터라,
그 외상이 마구 뒤섞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닌 것들도
연애로 인한 고통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
.

내게 이성과의 사랑과 섹스는
징그러움과 공포다.

어쩌면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는 단어들이
나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는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경험으로 인해 학습된 결과인 셈이다.

이 부분을 풀어보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정말 후회없이 살고 싶고,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딱 하나 잘 안 되는 게 연애이기 때문이다.

관심 없어서 안 하는 거면 모르겠지만
무서워하고 있다니,
그냥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몇몇 삼사십대 어른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이십대로 다시 돌아가면
연애를 더 많이 할 거라고 대답하곤 하니까.
정말 이렇게 연애에 대해서 방어적인 태도만을 유지했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그러니
이제 풀어봐야지.


.
.


사실 시작이 반이라고
여기에 대해서 일기를 쓴 것만 해도 이미 
이 문제는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얼른 다시 이 일기를 돌아보며
'아 그땐 내가 연애를 정말 싫어했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 날이 오기를.

빠르면 1년,
길면 2,3년 일 듯 싶다.

그 날을 기다리면서
오랜만에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본다.
좋은씨앗  16.03.28 이글의 답글달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잘지내시죠? 하나양 ^^;;

李하나  16.04.08 이글의 답글달기

오랜만이에요 좋은 씨앗님:) 넹넹 잘 지내고 있답니다. 좋은씨앗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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