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에 대하여...   2016
  hit : 1959 , 2016-10-24 14:03 (월)


프로야구 원년부터 베어스팬이지만, 가장 가슴 뜨거워지는 선수는 최동원이고, 가장 열광했던 경기는 '1984년 한국시리즈'다. 유튜브를 통해 심심하면 최동원의 이 경기를 본다. 이 경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 

1. 
정말이지 몰상식하고 비정상적인 시절이라는 생각. 우선 스트라이크 존. 아무리 포스트 시즌때에는 좁아지는 존이라고 하지만, 좌우 홈플레이트를 걸쳐 들어오는 공은 단 하나도 잡아 주지 않았다. 거의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만 스트라이크. 대신, 위아래로 공 하나씩 여유를 주긴 했는데, 어설프게 가운데 높게 들어오는 공은 여지없이 장타를 얻어맞게 되어 있다. 지금이라면 엄청난 질타를 받을 만큼 쓰레기같은 바늘구멍 존. 그런데도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5경기 등판해서 4승1패 방어율 1.80을 기록했다. 정말...미친 능력이다. (참고로, 국보급이라는 선동렬은 한국시리즈에서 선발승 기록이 통산 2승뿐이다. 26살. 최전성기이자 가장 강력한 공을 던졌던 1988년 한국시리즈 때, 1차전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 1승을 따내고는 이후 시리즈내내 등판하지 못했다. 그리고 91년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등판때까지 구원등판 뿐이었다)

2. 
'롯데는 최동원 팀'이라는 말이 그냥 수식어가 아니라는 것. 어쩌다 흥이 나서 롯데 방망이가 맞아 질때는 공격력으로 재미를 보긴 했지만, 아주 기본적인 수비도 심각한 막장수준이라 기껏 벌어놓은 점수 다 까먹는 팀. 이런 팀이 어떻게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왔을까...했더니 정말 최동원이라는 한 시대의 거인 덕분이라는 거 외엔 설명이 안된다. 84년 당시 한국시리즈 시합 영상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수비실수들을 보여주고 있다. (비웃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맞춰잡기보다 더욱 더 삼성타자들을 윽박지르듯 던지는 최동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 
지금은 한 게임당 선발투수의 한계 투구수를 100개 내외로 보고 있다. 그 정도가 구위를 유지하는 평균적 투구수로 보는 셈.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은, 10일동안 5게임 등판해서 40이닝을 던졌다. 이게 어떤 의미냐면, 첫날 던지고, 하루 쉬고, 다음날 던지고, 하루 쉬고, 또 그 다음날 던지고...그렇게 열흘동안 했다는 얘기. 게다가..한 이닝당 공을 약 10개 정도 (수준급 투수의 경우) 던진다면, 40이닝이면 대체로 400구 정도를 던졌다는 말. 나중에 구위가 떨어져 타자들이 커트를 하면서 공을 더 던졌겠지만 그냥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이렇다는 얘기.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격일로 등판해서 10일동안 투구수 400개 넘게 던졌다는 얘기. 지금처럼 선발투수가 5일 로테이션을 유지하는 이유가, 투구수 100개 이상 던지면 어깨 근육에 피로가 와 글리코겐 분해로 젖산이 축적되는데 이 젖산이 완벽하게 분해되어 글리코겐으로 완전히 다시 합성되기 전에는 정상적인 투구를 하기 어렵기 때문. 그래서 최소한 3일이상의 휴식이 그래서 필요한 것. 그런데, 열흘동안 하루 쉬고 하루 던지는 연투를 펼치는 최동원은 그냥 과학적 상식을 뛰어 넘는 괴물.

4. 
더 나아 볼까. 프로야구에 들어오기 전, 81년 실업팀 롯데에서 뛸 때도 5전3선승제 실업야구 한국시리즈에 올랐었다. 그때, 한국시리즈에서 치룬 롯데의 6경기(3승1무2패)에 모조리 등판. 일주일동안 무려 42이닝을 던져 2패후, 무승부까지 포함 3연승으로 실업롯데를 우승시켰다. 이 경기뿐 아니라, 아마시절에 최동원의 혹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그리하여 무시무시했던 아마시절 구위가 확 죽은채 KBO프로야구에 들어 왔다....는데도 리그 탑 수준의 폼을 보여주고 막장팀 롯데를 우승까지 시켰다. 또 그렇게 84년 한국시리즈에서 말도 안되는 혹사를 치룬 뒤, 구위가 죽었다......고 했는데도, 다음 해 85년에 20승을 했고, 86년에 19승을 하고, 87년에 14승을 거뒀다. 아마도 '선수협 결성'이라는 십자가를 나서서 지지 않았다면...88년에 삼성으로 문책성 트레이드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은퇴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랬다면 좀 더 길게 선수생활을 했을 것이고, 또 그랬다면....감독 최동원의 모습까지 봤을 수도 있을 거다. 

5. 
지금도 강속구의 기준인 150km을 이미 70년대에 훌쩍 넘겼던 강력함. 변화구 구종의 다양함과 원하는 지점에 집어넣는 정교함.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경기를 온전히 책임지는 이닝이터로서의 근성까지...빠르고 정교하고 그리고 절대 지지 않는...거의 완벽한 투수. 지금까지 이런 최동원에 비교될만큼, 아니 그런대로 비슷하게 활약을 했던 투수가 존재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불세출! 전무후무!....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기 힘든 이런 거인이 의외로 참 평범하게 잊혀져 간다는게 너무 아쉽다는 생각. (가끔 야구카드나 야구게임에 나오는 능력치 비교를 보면, 선동렬과 박찬호보다도 한 단계 아래, 심지어 류현진보다도 아래로 취급하는거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 뿐이다. 하긴, 그걸 만든 '아이'들이 최동원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6. 
대한민국에는, 안그래도 뭘 잘 모르는 불모지같은 곳인데, 심지어 아직 뭘 잘 모르는 인사들이 전문가로 판치는 대중적 분야로 '불시착'한 탁월한 천재들이 꽤 있다. 축구에 차범근, 피겨에 김연아처럼...그냥 동시대 어떤 A급 선수들처럼 '잘 하는 수준'으로만 평가되는 정도 말고, 그 천재의 존재로서 '특별한 의미'를 찬찬히 평가받고 그래서 오래도록 아껴줄 수 있는 그런 '인식'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런 측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뭐 있을까...하는 생각. 그런데... 최동원을 보고 또 생각이 많이 나갔구나....하는 생각. 이제 그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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