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그럭저럭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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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중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싸 두고 통화를 했다. 그러며 책상 맡에 앉는 내 눈에는 당신이 교육하는 아이들이 주웠다는 벚잎이나 당신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준 손가락 만한 인형이랄지 장난감이랄지 애매한 것이 보였을 것이다. 더 할 말이 무엇이 남았을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통화를 마치는 것은 언제나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Tout a déjà été écrit, 그러나 모든 글이 이미 쓰였고, 연구되었다는 말은 시대에 대한 자부심에 의한 오만 그리고 허무에 잠식되려는 예감에 의한 두려움이었을 것을 생각한다. 그날밤의 통화를 마친 것은, 다음날 아침에 당신에게 가기로 했던 예정을 가능하면 더 앞당기기 위해서였다. '고속버스' 어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아서, 마지막 버스의 좌석을 예약하고 나는 택시를 탔다. 버스를 탔고, 도착한 종합터미널에서 당신의 집 앞까지 다시 택시를 탔다. 문을 열어준 당신은 무엇 때문인지 한 번 깜짝 놀라고는, 부스스한 머리는 두고 부은 눈을 비볐다. 이사 직후라 아직 침대가 없던 방에 누워 우리는 살포시 잠들었다. 그 여름의 새벽, 창밖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려왔을까. 2. 슈퍼키드의 '그럭저럭'은 꽤나 오래 전부터 즐겨 듣던 노래이지만, 당신과 깊게 연결지어 생각해서 이입해 본 일은 없었다. 노래 가사는 수염을 두고 잔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당신은 내가 수염을 기르던 때의 사진들을 보며는 멋있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것은 수염 때문이 아니라 누가 봐도 거침 없어 보이는 (당신의 눈앞에 있던 나의 모습과는 이미 제법 다르던) 분위기 때문이었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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