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스크랩-스틱 Stick  
  hit : 2713 , 2009-11-21 17:11 (토)
"스틱"(칩 히스, 댄 히스 지음, 웅진윙스刊) 을 읽다.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지식의 저주>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부분은 심오한 통찰력이 번득인다.


1990년 엘리자베스 뉴턴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간단한 놀이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심리학 박사학위를 땄다.

그녀가 연구한 놀이는 단순했다. 그녀는 실험에 참가한 두 무리의
사람들에게 각각 "두드리는사람"과 "듣는 사람"의 역할을 주었다.

두드리는 사람은 생일축하 노래나 미국국가 같은 누구나 알고 있는
25곡의 노래가 적힌 목록을 받았는데, 그들의 임무는 목록에 적힌
노래 가운데 하나를 골라 노래의 리듬에 맞춰 테이블을 두드리는
것이다.

듣는 사람은 두드리는 사람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노래의 제목을
맞혀야 했다.

듣는 사람의 임무는 상당히 어려웠다. 뉴턴의 실험 과정에서 선택
된 노래는 모두 120곡 이었는데 듣는 사람들은 그중 겨우 2.5퍼센
트, 즉 단 3곡밖에 맞히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실험 결과가 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이유는 따로 있었
다. 듣는 사람이 노래의 제목을 예측하기 전에 뉴턴은 두드리는 사
람에게 상대방이 정답을 맞힐 확률을 짐작해 보라고 했다.

두드리는 사람들의 대답은 50퍼센트였다. 실제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확율은 마흔 번 가운데 한 번에 불과했음에도, 두드리는 사람
들은 가능성을 반반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두드리는 사람들은 테이블을 두드릴 때 머릿속에서 노래소리를 듣
는다. 어디 한번 직접 해보라. 국가의 리듬에 맞춰 책상을 두르려보
라.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머리속에 익숙한 선율
이 흐르지 않는가?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 음악이 들리지 않는
다. 그들의 귀에 들리는 것은 조금 이상한 모스부호처럼 아무런 의
미도 없는 '딱딱"소리 뿐이다.

두드리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멜로디를 알아맞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 정도면 누워서 떡먹기잖
아! 듣는 사람이 생일축하 노래를 미국국가라고 대답했을 때 두드리
는 사람의 표정을 당신도 봤어야 한다! '뭐 이런 바보가 다 있담?'

일단 정보(노래의 제목)을 알게되면 두드리는 사람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다는 느낌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테이블을 두드릴때, 그들은
맞은편에 앉은 듣는 사람이 음악이 아닌 단순하고 단절된 몇 개의
타격음밖에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다. 일단 무언가를 알고 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정보가
'저주'를 내린 셈이다. 또한 이러한 저주는 우리의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이제 듣는 사람의 심정을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이런 게임은 날마다 세계 곳곳에서
재연되고 있다. 그들은 회사의 CEO와 일선 직원들이고, 교사와 학
생이며, 정치가와 유권자, 마케터와 고객, 작가와 독자다.

이들은 모두 의사소통에 깊이 기대고 있지만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처럼 엄청난 정보의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의 CEO가
'주주가치의 극대화'라고 말할때 그의 머릿속에는 부하 직원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멜로디가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난해한 문제다. CEO는 30년 동
안 날마다 비즈니스 논리와 관습을 되새김질해왔을테고, 그러한 과
거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돌리는 것처럼 불가
능한 일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는 일
은 불가능하다.

'지식의 저주'로 부터 확실히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첫째는 아예 처음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메시지를
받아들여 변형하는 것이다.

이책은 당신에게 메시지를 변형시켜 '지식의 저주'로 부터 벗어나
는 방법을 가르켜 줄 것이다
                                                        - 37~40쪽 -

(책은  끝까지 읽었으나 난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거 같다)
아남카라  09.11.21 이글의 답글달기

지식의 저주. 저도 압니다. 남녀의 다른 가치관도 그럴것이고.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설명하는 것도 그럴 것이지요.
항상 본질의 왜곡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왜곡된 가공을 통해서 쉽게 이해는 하지만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프러시안블루  09.11.22 이글의 답글달기

도올 김용옥이 <동양학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책에서 고전의 현대적 번역을 이야기하며 꺼냈던 격의格意라는 개념이 떠오르더군요.

그에 따르면, 기독교가 중국에 처음 들어갔을때 그때까지 중국에는 없던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가 큰 과제였는데 결국, 천제 天帝로 번역할 수 밖에 없었대요.
(저로서는 天帝가 더 어려운데 옥황상제 비슷한거 아닐까요?ㅎㅎ)

하나님과 천제의 개념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맛데오리치같은 당시의 성서 번역자는 이러한 <변형의 불가피함>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프러시안블루  09.11.22 이글의 답글달기

천주실의 같은 책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정약용, 정약전 같은 이가 파악했던 기독교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기독교는 사실상 차이가 있다는 점이 참 재미있죠.....

그들은 <변형>된 기독교에 대해 공부했던 셈이랄까..

아남카라  09.11.21 이글의 답글달기

프러시안 블루님의글은 항상 좋네요.

heartbreaker  09.11.21 이글의 답글달기

마지막 한 줄이
반전영화의 반전같았어요..ㅋㅋ (오반가 -.-)

난아무도안믿어  09.11.22 이글의 답글달기

이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

외계인아저씨  09.11.22 이글의 답글달기

저희 사장님의 경우군요.. -_-

가르쳐줘도 이해못하는 나를 더 이해못한다는 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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