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해하지 않기 │ deu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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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만에 상담을 받고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내가 갖고 있는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문 소리를 들으면 불안하고 도망갈 준비부터 한다고. 그리고 남자들이 나에게 화를 내거나 못되게 굴면 지나치게 불안하다고. 연장을 든 남자들을 보면 그걸로 나를 때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 . 상담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해결해나가자고 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그렇게 14년을 살았다고. 그리고 벗어난 지 이제 겨우 반 년이라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괜찮아지고 있는 거라고. 대단하다고. . . 새삼스러웠다. 나 14년동안 그렇게 살았구나. 그리고 정말 이제 겨우 반 년이 되었구나.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구나. 맞는 말이다. 14년, 아빠와 같이 살았던 건 20년. 14년과 반 년 견줄 수 없는 시간이다. . . 반 년 만에 혼자서 많이 노력해서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도통 사람을 믿지 못하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통해 사람을 알아가는 일을 즐긴다. 도통 남자들과는 친해질 수 없던 내가 이제는 남자들과도 잘 지내고 오히려 여자보다 남자들이 편할 때도 많다. 도통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던 내가 이제는 표정만으로 감정을 읽히고 시끄럽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웃는다. 도통 자존감을 갖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명확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의 가치를 믿으며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도통 내 이야기를 할 줄 모르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과 나를 나누어가질 줄 안다. . . 수고했다. 잘했다. 대단하다. 그러니까 나는 할 수 있다. 더 좋아질 수 있고 앞으로 사랑도 할 수 있을 거고 사랑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다만 일전에 말했듯이 조금 늦을 수도 있어. 훨씬 더 늦게 훨씬 더 안 좋은 상태로 훨씬 더 안 좋은 곳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나를 믿어. 결국에는 모두 극복해낼 거야. 언제가 됐든. 할 수 있지만 '아직' 인 거야.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힘들면 개미가 기어다니는 그루터기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고 마른 풀밭에 누워 별도 좀 보다가 6월의 어느 날엔 푸른 플라타너스 밑에서 꾀꼬리 노래 소리를 조금 듣다가 지나가다 눈에 띄는 낙엽더미를 바삭바삭 신나게 밟으며 놀기도 하고 눈이 오면 잠시 따뜻한 곳에서 쉬어다가 그렇게 가자. 그렇게 웃고 울고 아지랑이 밑에서 모래 바닥에 그림도 그리면서 그렇게 땡볕과 놀며 천천히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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