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집중 치유 일지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내 종이 일기장에 써도 되는 것이지만
뭐,
눈을 감고
'어디에 쓸까'
라고 나에게 물어보면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울다'
쪽이 조금 더 끌리기에
그저 이곳에 쓴다.
언젠가
'종이에 쓸래'
라고 내가 이야기하면
그 때
종이에 쓰면 된다.
.
.
사실 조금은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나야 상관이 없어서 내 이야기를 여기에 올린다지만
괜히 지나가다가 내 글을 읽고
충격을 받거나 기분이 안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사실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므로.
만약 정말로 그런 분이 있다면
하나에게 꼬옥 이야기해주세요.
.
.
지금까지는
'본능'적인 치유였다.
짐승이 제 상처를 핥듯
살기 위해 내 상처를 보듬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명확한 내 의지와 목표를 갖고
'행동'할 것이다.
집중적으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내가 치유 과정 중에 있음을 인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똑바로 밟아나갈 것이다.
나를 이끌어줄 많은 사람들과
소중한 것들이 내 곁에 있다.
'아주 특별한 용기'라는 책은
치유 과정 내내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든 열든
내 곁에 있어줄 것이다.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주 소중한 책이다.
내 말을 믿어주고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나의 상담사 선생님도
치유의 과정에 함께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와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하나뿐인 나의 친구,
내가 무엇을 하든
언제나 나의 편인 나의 친구.
내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든 없든
내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나의 삶을 언제나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이 곳, 울트라다이어리.
무엇보다도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 할,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나 자신.
치유를 위한 자원은 모두 갖춰졌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나 자신을 치유할 것이다.
.
.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
는 치유 과정 내내
꾸준히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허용하고 응원하고 믿어주기.
그리고 상담을 꾸준히 받으면서
개강하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작은 말하기 대회'나
성폭력위기센터에서 운영하는
'집단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이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가감 없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이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얼른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믿을 수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
.
동시에 고소에 대한 발걸음도 시작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22년을 살면서
나는 항상 착한 아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만 사실
나는 가장 잔인한 아이였을 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게 그토록 잔인했으니.
그러니 이제는
나 자신에게 착한 아이가 되어보려고 한다.
그가 나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할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무너졌으므로
그가 죗값을 치르도록 할 것이다.
어차피 증거가 부족해
녹취가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기에
그와 여러 번 대화하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는
그 육성을 기록으로 담아야만
나의 이야기가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는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그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토해낼 것이다.
얼마 전 그와 만났을 때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아직도 가슴에 묻혀있다.
내가,
'아빠가 나한테 잘못했잖아.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되는 거 아니야? 나한테 관심 없어?'
라고 물었더니
그가 한 대답이란
'너도 나한테 관심 없잖아.'
내가 등록금 때문에 힘들다니까
그가 하는 말이란
'내가 지금 너는 법적으로 양육비를 받을 나이가 아닌데도
한 달에 30만 원씩 주고 있잖아.
나도 지금 부인한테 한 달에 150만 원씩 생활비 줘야 돼.
앞으로 못 도와줘. 그러니까 서운하게 생각하지마.'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사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무슨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이런 것에 일일이 분노했다면
나는 진즉에 정신 병원에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종류의 뻔뻔함은
그가 평생 지녀온 것이니까.
그래도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은 나를 성폭행했어.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힘들고.
당신이 한 짓은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하고
징역을 십 년을 넘게 살 정도로
큰 죄야.
내 어린 시절을 망쳐놓고
인생을 힘들게 만들었고
나라는 한 인간을 완전히 유린했으니까.
그런데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죄하기는 커녕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뻔뻔한 건데?
어이가 없다, 진짜.
언제까지 그렇게 뻔뻔할 수 있나 보자.'
라고.
'나는 이제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더이상 내가 희생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가 더이상 뻔뻔하게 굴지 못하도록.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도록.
.
.
그래서 마침내는
지금처럼 하루 종일
'나는 성폭행 당했어'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일 같은 건
며칠에 한 번쯤
아니 몇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 두번쯤 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단지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
.
그러니까 나를 응원해주세요.
나는 열심히 열심히 노력할 거랍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저와 같은 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 함께 노력해봐요.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가해자가 잘못한 거지.
우리는 당당해야 해요.
분연히 일어나
당당히 외쳐야 해요.
'네가 잘못했다. 그러니 나에게 사과해라, 야 이 새끼야'
라고.
누가 이상한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거든
'뭘 봐'
라고 당당히 이야기하기:)
.
.
더러운 년
뭐 자랑이라고 그런 걸 들춰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인생 망치려고 그러니
쉬쉬하고 다 잊고 살아
너도 즐겼잖아
죽기살기로 도망쳤어야지
저항 못한 네 잘못도 있어 그냥 묻고 살아
엄마한테 왜 얘기 안했어
너도 한 편이었지
너도 좋았잖아
창녀
넌 망가졌어
네가 행동거지를 어떻게 한 거야
너 좀 이상한 거 같아
쪽팔려
너 남자친구 어떻게 사귀어
정신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콩가루 집안이네
정상이 아닐 거 같아
꺼져
난 더럽지도 않고
자랑이 아니라 내가 당한 피해 당당히 이야기하는 거고
연애도 하고 시집도 갈 거야
그 딴 편견 없는 좋은 사람 만나서.
인생 망친다고?
아니, 이게 왜 인생 망치는 거야?
당당히 내 이야기 하는 거지.
난 꿇릴 거 없어.
쉬쉬하고 다 잊고 살라고?
내가 왜?
쉬쉬할 건 가해자지 내가 아냐.
내가 즐겼다고?
그래 쾌감을 느낀 건 맞아. 인정해.
잘 들어.
어린 내가 성적 쾌감을 느끼게 한 것 자체가
그것부터가 바로 폭력이야.
알아?
내가 즐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자행된 폭력이라고.
나는 학대 당한 거야.
10살 짜리가 섹스를 즐긴다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 10살 짜리를 주무르고 만지고
강간한 네가 잘못한 거야.
죽을 죄를 지은 거라고.
죽기살기로 도망치라고.
저항 못한 내가 잘못이라고.
야 이 미친 새끼들아.
7살 짜리 여자애가
서른 살이 넘은 성인 남자를 어떻게 이겨.
그렇게 어린 나이에
폭력에 노출되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애가
자라서 중학생이 됐다고 해서
고등학생이 됐다고 해서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줄 알아?
세뇌라는 말이 왜 있는데.
엄마한테 왜 얘기 안 했냐고?
얘기 했잖아, 14살 때 한 번.
그래서 달라진 게 뭔데.
나한테 해준게 뭐냐고.
나를 앉혀놓고 얼마나 힘들었냐
앞으로는 내가 너를 지켜줄 거다
이렇게 다독여줬어?
무슨 일 있었냐고 꼬치꼬치 캐묻기만 하고
결국에는 그 새끼랑 계속 같이 살았잖아.
적어도 나는 내보냈어야지.
나는 다른 곳에 보냈어야지.
그리고 당장 나를 병원에 데려갔어야지.
어디 다친데는 없나.
정신 병원이든 심리 치료 센터든
이런 곳에도 갔어야 했어.
그런 거 하나 해줬어?
그냥 둘이 주구장창 싸웠잖아.
그 새끼는 맨날 나보고
'니가 말해서 이 사단이 났다'고
뭐라고 하고.
엄마는 툭하면 싸우고 혼자 집 나가버리고.
그렇게 한 1년 싸우더니 결국은 그냥 다시 살기로 했잖아.
자기 아빠한테 성폭행 당했다고
울면서 얘기하는 딸을
그 괴물하고 한 집에 계속 살게 하면서
자기들끼리는 알콩달콩.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알아?
너도 한 편 아니었냐고.
그래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왜 나는 아빠가 나를 성폭행 할 때
아빠랑 같이 엄마가 깰까봐
노심초사 했을까.
엄마가 깨서 걸리는 게 나한테 더 좋은 건데
나는 항상 엄마가 꺨까봐 걱정했다.
그리고 엄마가 깨서 내 방에 와서
성폭행 하는 장면을 걸리면
나는 자는 체 하곤 했다.
나도 이 부분은 잘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야.
나는 그 때 고작 8살이었다고.
너도 좋았지 않느냐고 이 개새끼야.
그래, 인정해.
오르가슴을 느꼈어.
하지만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강제로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 건
폭력이야.
자의로 느낀게 아니라
억지로 나를 위협하고 무력화시키고
내 다리를 벌려서 내 그곳을 자극해서
결국에는 내가 원치 않는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
네 잘못이라고.
알았어?
좋았냐고?
씨발
그래, 내 몸은 좋았다.
근데 나는 미칠 지경이었어.
내 영혼은 혼란과 내 자신에 대한 혐오로
까맣게 타들어갔다고.
알았어?
창녀라.
11살때쯤인가,
그 때부터 나는 항상
'나는 창녀야'
라고 생각하곤 했다.
내가 얌전히 굴어서
성관계를 무사히 마친 후면
그는 늘 나에게 만원이고 이만원이고
용돈을 주곤 했다.
처음에 나는 더러운 돈이라면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제부턴가는 그 돈을 아주 요긴하게 쓰고있었고
돈이 떨어질 때면
그 돈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창녀야. 죽어버려야 돼'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에 아파트 창문에 의자를 대놓고
몸을 내어놓아보기도 했지만
차마 몸을 던질 용기는 없었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망가진 걸까.
수 백번을 강간 당하고 성폭행 당하면서
나는 더럽혀진 걸까.
솔직히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나랑 섹스를 할 때
더럽다고 느낄 것 같다.
.
.
하지만 나는 이상하지 않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반듯하고 곧게 자랐다.
예쁘게 자라났다.
누구보다도 멋진 것들을 가슴에 품고.
절대로 이상하지도 않고
비정상적이지도 않고
찌질하지도 않다.
누구보다도 예쁘고 멋지다.
그러니까 나는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