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한 번 살아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개새끼야
너 인간 하나 잘못 건드렸다.
네가 또라이인 것 만큼
내가 다른 의미에서 어마어마한 또라이라는 걸
보여줄게.
.
.
상상도 못할 만큼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줄게.
.
.
음
몇 년 후
아니면 10년 후 쯤
저런 제목의 에세이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땅에서 성폭행 피해자로 살아가기'
그 때 쯤 가서는 피해자라든지 생존자라든지
회복자라든지
하는 용어를 선택할 수 있겠지.
어쨌든 지금은 피해자다.
그래서 내가 20살 때부터 썼던 일기들을
쭉 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거야.
사실 은수연님의 책도 좋긴 한데
그래서 일상은 어땠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 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을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살고 있어요.
물론
이렇게 사세요,
는 아니다.
다만 그저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니'가 되어주고 싶다.
아 언니는 이렇게 사셨군요.
언니도 저와 같이 이런 고민을 하셨네요!
하고 느낄 수 있게.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덜 외로울 수 있도록.
.
.
여성주의 시각도 배워보고 싶다.
물론 성폭행이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성들도 얼마든지 성폭행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나는 여성 피해자고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은 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주의 시각이 중요하긴 한 것 같다.
그런 단체에서 활동해보고 싶다.
그런 활동도 해보고 싶고.
나중에는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한테도
관심이 갔으면 좋겠다.
아직 길이 먼 것 같아서
그 분들께는 위로를 드리고 싶다.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빛을 보실 거라고.
다만 아직은 너무 여성 피해자의 비중이 커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사회의 변화는 더디기만 해서 참 안타깝다고.
더불어 노인 성폭력도.
성폭력은 남성 가해자와 여성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저 폭력을 행사하는 자와
그 폭력에 노출되는 자
이 양자의 관계이니까.
.
.
아무튼
이 쪽을 파고들면
확실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부쩍 심리학에 흥미가 생겨나고 있다.
사실 내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건
이 학문의 '삐딱한 시선'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하질 않는다.
어찌 보면 깐깐하지만
어찌 보면 아주 '주체적'이고 '자유'롭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오로지 '사실'만을 인정하는
과학의 정신을 이어받았달까.
사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나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늘
어른들 생각
언론에 보도된 사실들
책에 나온 생각들
친구들이랑 나눈 얘기들
이 뒤섞여서 그냥
'나의 생각 비슷한 것'이었다.
언론에 그렇게 보도 되었으면
그런 것, 이었고
책에 그렇게 씌어있으면
그런 것,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프로이트의 말은 맞는 게 아니라
맞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맑스의 이론도
맑스의 의견일 뿐이다.
물론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의견.
이런 대학자들에게도 흠은 있을 것이다.
학부생 주제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상식'
그리고 '통념'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증명'
그것이 사회과학의 매력이다.
그것이 사회과학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다.
사회과학부 사람들이
조금 구식이라든가
꼬질꼬질하게 비춰지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냥 좀 넘어가면 될 걸
안 넘어가니까.
그냥 좀 쉽게 생각하면 될 걸
복잡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니까.
사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
좀 학자병에 걸리기는 한다.
뭔가 좀 아는 것 마냥.
하지만 현실과 학문 사이를 잘 조율하기만 한다면
이처럼 이 사회에 필요한 학문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 자체를 진보하게끔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니까.
사회는 사람들이 좀 더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고안해낸 삶의 방식이다.
모여 사는 것.
흩어져 사는 것보다는 모여 사는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렇게 모여 살면
여러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좋은 현상이든 나쁜 현상이든.
그런 것들에 대해 알아야
좋은 것은 좋게
나쁜 것은 더 낫게
만들 수 있고
그래야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으며
그래야 인간이 살 수 있기에
사회과학은 생겨났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그래서 나는 사회과학에 애정이 깊긴 하다.
하지만
뭐랄까
그 '정신'에는 끌리는데
사실 과목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홉스의 사상이라든지
사회조사방법론이라든지
정치사라든지.
그런데 심리학은 정말 재밌다.
내가 먼저 책을 펼쳐보게 되고
공부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도 해볼 수 있겠고 저렇게도 해볼 수 있겠다, 하고.
이런 점은 나랑 이렇게 관련이 있네
이 내용은 좀 더 찾아봐야겠다, 등등.
공부를 하는 내내
'아, 이 분량만큼 해야 돼'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그게 재밌어서 할 수가 있다.
아주 오랜만이다, 이런 공부는.
그래서
아,
이렇게 수업을 들어야
수업이 내 것이 되는 거구나.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심리학이 내 적성에 맞고
또 상담심리학에도 관심이 크니
내친김에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
.
.
해외교류 쪽도
재능이 있다.
인솔자분이 교류 쪽에 재능이 많고
잠재력이 있다고
진지하게 말씀해주셨다.
현지 활동의 막바지 즈음에는
여기에 남아서 한 두달 쯤 있을 생각이 없느냐,
고까지 물으셨다.
이 참에 이 쪽으로 나가보라고.
진지하게 생각해봤지만
일단 한국에 해결할 문제도 있고 해서
일단 귀국했다.
하지만 해외 교류 또한 매력적인 일이다.
가치가 있는 일이고.
상호 발전을 꾀할 수 있으니까.
이 쪽 일도
계속 경험을 쌓아가야지.
하다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들어보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
.
.
이것저것 해봐야겠다.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은 참 좋다.
사람은 이렇게 사는 거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