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공유해놓은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참 많이 화를 내었죠.
무슨 글이길래 이렇게 화를 낼까 싶어
그 글을 읽어보았어요.
어떤 스님이 쓴 글이었어요.
자신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미워하지 마라,
그도 남자였을 뿐이다.
라는 주제의 글이었어요.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의 댓글 밑에
그 글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려다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냥 달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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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하신 말씀을
제 식대로 해석해보자면
어차피 그를 미워하는 것은 모두 내 마음의 조화,
라는 것이었지요.
그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고 나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 모두
내 마음이 하는 일이고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 역시
일어난 그 일 자체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
이니
그를 미워하지 말아라.
그러면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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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개론 시간에 배웠던
지각,
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요.
A라는 존재는
A라는 것 그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A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고
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주체는
어딘가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
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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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인가봐요.
아는 것과
아는 대로 사는 것은.
과거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떠올리고 그로부터 힘들어 하는 내 자신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란 걸.
그를 미워하는 일은
그의 인생에는 한 점의 영향력도 주지 못한 채
오로지
정말 오로지
내 인생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러니까 그 사람은
미워할 가치도 없고
내 마음의 세상에
둘 가치가 없다는 걸.
이미 어른이 된 하나는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실천하려 애쓰며 살고 있지요.
하지만
그걸 아파하는 건 도대체 누구인 걸까요.
어른 하나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아프다고 울어요.
밉다고 소리 질러요.
그런 게 어딨냐고
그 사람이 나쁜 거라고.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한 게 없다고.
어떻게 나한테 그래놓고 그렇게 뻔뻔하게 살 수가 있는 거냐고.
벌을 받게 해줄 거라고.
그러면 또 대답해요.
그 사람이 벌을 받든 안 받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든 뉘우치지 않든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의 인생이고
내 인생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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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찍어온
미움이라는 사진.
그 수 천 장의 상(狀)들이 모여 만든
견고한 마음의 지도.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내 마음에 찍힌 그 사람의 사진,
그 사람의 형상이라는 것.
만약
아주 만약에
그런 일이 나에게 전혀 일어난 적이 없었고
그런 사람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다고 믿어버린다면
나는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불행하다는 것.
중요한 것은 내 마음 속에 찍힌 사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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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끔 여전히 화는 나지요.
내 앞에 무릎 꿇리고 싶고
눈물 흘리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사진을 찍던 그 아이가
늘 바라던 것들이겠지요.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늘 지금,
그 순간의 욕구였을 거예요.
그 아이는 시간의 뒷편으로 사라져 가고
그 아이가 찍은 사진들만이
미래의 내 손에
덩그러니 남아 있어요.
그 사진은
오로지 과거에 속한 것.
하지만 기억이라는 녀석은 강력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지 못해서
그것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그 사진이 내뿜는 향기만을 받아들여요.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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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그 자체를 보아라.
그 사진을 꺼내서 보라는 말씀,
인가요.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
가 아니라 그 사진 그 자체.
쉬운 일은 아니겠어요.
늘 이 지점에서 막혀요.
나 자신을 풀어주는 것과
합리화를 경계하는 것.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지.
그러나 그 일 자체의 무게를 외면하고 싶은 건 아닐지.
미움과 대상을 분리하는 식으로 해결할 문제라면
세상에 용서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것,
이라는.
둘 사이의 조율,
의 과정인 듯 싶어요,
하나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가끔은
살짝만 더 일반적인 일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조금만 더 흔한 일을 겪었더라면.
그러면 이런 과정 중에 아찔하게 핑 도는 일이
덜했을텐데.
가끔은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을 가 있고
그렇게 잠시 자신을 잃는 순간
미움이라는 감정이 치고 들어와요.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익숙한 상식의 선을 넘어서는 그 단계.
그 단계에서 판단의 기준을 잃고
감정에 휘말리게 되지요.
지금은 조금 이성적이고 명료한 새벽이니
대화를 한 번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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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움아.
- 어, 안녕.
넌 누구니.
- 응?
누구냐고.
- 네가 미움이라고 불렀으니까, 난 미움이겠지.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렇네. 똑똑하구나.
- 무슨 실 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왜 불렀는데?
네가 자꾸 날 찾아오길래 누군지 궁금했어.
- 내가 널 찾아갔다고? 난 아무데도 못 가는데 무슨 소리야.
아무 데도 못 가다니?
- 나는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냥 여기 있는 걸. 지금도 네가 온 거잖아.
네가 오는 거 아니었어?
- 난 못 움직인다니까.
넌 여기 있는 거야, 늘?
- 그래. 늘 여기 있어. 내 자리는 여기니까.
그럼 너는 내가 찾아올 때만 나를 만나는 거야?
-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자꾸 오니까 나를 만나게 되는 거잖아. 너야말로 왜 자꾸 오는 건데?
네가 나를 부르는 줄 알았어.
- 내가?
응. 네 목소리가 들렸거든.
- 아, 내 목소리가 조금 크긴 클 거야. 하지만 널 부른 건 아니었어. 난 그냥 나대로 소리를 지른 건데.
왜 소리를 질렀는데?
- 소리 지를 일이 있었거든.
그냥 소리 지르고 싶어서 지른 거야? 누구를 부른 게 아니라?
- 응. 난 그냥 영원히 여기서 소리를 지르고 있을걸.
왜 안 멈춰?
- 멈추고 말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나는.
넌 아무것도 못 해?
- 응.
뭐야 그럼, 너는?
- 모른다니까. 뭐가 그렇게 궁금해. 그냥 가던 길 가. 난 그냥 여기서 계속 소리나 지르고 있을 테니까.
넌 그냥 영원히 여기서 소리를 지르고 있을 거야?
- 몰라, 그것도. 지르면 지르는 거고. 왜? 시끄럽니?
응. 자꾸 들려. 그래서 자꾸 널 보러오게 돼.
- 유감이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든지. 아마 시간이 지날 수록 덜 들리지 않을까?
네가 계속 멀어지니까.
그런 방법 밖에는 없는 거야?
- 뭘 원하는데?
안 들렸으면 좋겠는데.
- 미안하지만 그건 무리야. 나도 어떻게 소리를 안 지르는지 모르니까. 난 그냥 소리를 지르게 생겨먹었는 걸.
알았어. 그럼 그냥 내가 알아서 해볼게.
- 그래, 잘 생각했어. 아, 참. 이것만 알아둬. 난 악의는 없어. 나도 어떻게 조그맣게 소리를 지르는 지 모르는 걸. 시끄러웠다면 미안해.
아니야, 네가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 애인지 몰랐어. 그리고 내가 찾아와서 괜히 듣는 게 맞는 걸 뭐.
나는 네가 오는 줄 알았지 뭐야. 듣기 싫으면 내가 안 오면 되지 뭐. 소리 지르는 건 할 만 하니?
- 할 만 하고 자시고도 없어. 그냥 하는 거야.
그래, 알았어. 난 이만 갈게 그럼.
- 응. 이제 안 오는 거야?
글쎄, 가끔 길을 잃으면 또 들르지 않을까?
- 알았어. 난 또 소리나 질러야겠다.
아, 조금만 기다려줘. 바로 옆에서 들으면 너무 소리가 크니까 나 조금만 멀리갈게.
- 뭐, 그래. 조금 있다가 지를게.
수고해, 그럼.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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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아.
- 안 갔어, 아직?
응.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 나 또 소리 질러야되는데.
조금만. 조금만 더 이야기하자.
- 음, 알았어. 하지만 언제 또 소리를 지를지는 나도 몰라. 너무 오래 안 지르는 건 힘들거든, 나도.
응 알았어.
- 뭐가 궁금한 건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리를 지르는 지 궁금해. 무슨 말을 외치는 건지도 궁금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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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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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시도에요.
재미있기도 하구요.
감사해요:)
- 티아레님께,
하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