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애플데이라고 한다.
사과의 날.
무슨 사과 아가씨, 이런 거 할 때 그 사과가 아니라
'미안해'
하는 그 사과이다.
10월 24일,
둘(2)이 서로 사(4)과 하는 날이라서
24일로 정해졌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신촌 apm 앞, 대현공원에서
문용린 교육감을 배석한 채 진행된 행사.
재미있는 부스도 몇 개 열렸고,
중학생, 초등학생 친구들의 공연이 뒤이었다.
사과와 관련된 주제의 뮤지컬,
'미안해' 라는 합창곡 등등.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평소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
솔직하게 사과하는 날.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문화를 위한 행사라고 했다.
.
.
한 부스에서는
포스트잇에 사과의 말을 적어 붙이는 활동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엄마가 이혼 후 한창 힘들 때
알아주지 못하고
왜 그렇게 힘들어하기만 하냐고 몰아쳐서
미안하다고.
이해해주지 못하고,
엄마 편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내가 엄마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써놓고 보니
엄마를 좋아하는 마음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
.
오늘은 날씨가 정말 추웠다.
높은 apm 건물이 햇빛을 다 가려버려서
행사장은 온통 그늘이었고,
찬바람까지 불어서 정말 추웠다.
하지만 역시,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 먹었다.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夷覺)
을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될 것이며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닫게 될 것이다.
뭐가 맞는지 나는 이제 도무지 모르겠다.
아버지를 고소하는 게 맞는 건지,
성폭력과 관련된 단체에서 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성폭행 경험에 매달리는 게 나에게 이로운 일인지,
엄마와의 관계를(표면적이 아닌 더 깊은 그 뿌리를) 회복하려는 게
억지인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고소하는 일은
2년이 넘게 고민을 했어도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어떤 때 생각하면 얼른 고소를 해버리고 싶다가도
또 어떤 때는 하지 않는 쪽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정의감에 불타올라 오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요소가 있지나 않을 까
겁이 나기도 한다.
성폭력에 대해서 공부하고
나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파고들고
그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으로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한 일인지,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벗어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직 못 벗어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벗어날 때 벗어나더라도 지금은 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
엄마와의 관계 역시,
회복하려 하는 게 가능이나 한 건지.
안 되는 일을 가지고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닌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떻게 한다고 변하는 건지.
나는 엄마와 성폭력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꿈인데,
그 꿈이 미련한 건지.
지금의 나로서는 답이 하나도 내려지지를 않는다.
이것들에 대한 답을 내려보겠다고
무던히도 생각을 지속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로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다.
고소를 해본 적도 없고,
해봤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어떤 게 좋은 지 알 수가 있단 말인가.
성폭력을 경험하고 성폭력 관련 단체에서
본격적으로 일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그게 옳은지 어떤 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엄마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해본 일이 없는데
어떻게 안단 말인가.
결국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 질문들인 것이다.
이 질문들이 향할 방향은
궁극적으로 내 안이 아니라,
내 바깥인 것이다.
답은 내 안에 있으나
그 답으로 가닿을 수 있는 지도는 바깥에 있다.
지도를 찾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살면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다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삶에 대한 답은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나온다.
반드시.
.
.
가고, 가고, 갈 것이다.
행하고, 행하고, 행할 것이다.
뭐가 옳은 지 모르겠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이해는 간다.
갈팡질팡,
무섭기도 할 것이고
뭔가 확신을 갖고 일을 시작하고 싶을 수도 있다.
잠시 고민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그렇게 고민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해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해보지 않고서는 답이 내려지지 않는 것들도 많으니까.
나의 질문들도 마찬가지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답을 내릴 수 없다.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으로
무언가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
틀려도 된다.
설사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땐 그렇게 알고 싶었던 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구나.
가자,
걷자.
살자.
.
.
오늘처럼 행사 진행하는 것이 재밌다.
뜻깊은 행사는 항상 내 맘을 꽉 채워준다.
성폭력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것도 재밌다.
성폭력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에 관련된 질문에 매몰되지 않고
생산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월요일날 일을 하기 때문에
법률상담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법률상담 날짜를 받고,
하루만 월요일 근무를 대체하거나
시간을 빼달라고 해야겠다.
상담 날짜 때문에 근무 날짜도 변경해야 하고.
.
.
그리고 성(性)과 관련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보고 싶다.
일을 해보니 사회과학이나 심리학 등이 적용되어 있었다.
내가 대학에서 전공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경력을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나는 일선에서 아이들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관련 부서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또 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악조건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인데,
예를 들어 난민촌이나
가난한 마을 같은 것이다.
가끔씩 이런 활동도 해보고 싶다.
물론 이 분야로 나갈 것인지는 차후에 생각해볼 것이다.
친구들이 이쪽 분야에 많이 있어서
마음만 확실하게 먹어진다면
길은 언제든지 뚫을 수 있으므로.
그리고 영어 공부도 하고 싶다.
나는 영어를 참 좋아한다.
이 참에 영어 실력을 높여보고 싶다.
자유롭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걸 연습해보고 싶다.
한 1년만 연습하면 충분히 편하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로 읽고 쓰는 것도 연습하고 싶고.
워킹홀리데이를 가볼까.
유학은 사실 돈이 부족하니까,
학비도 생활비도.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를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아니면 자원봉사도 괜찮겠고.
자원봉사도 역시 돈이 문제긴 하지만,
지원이 가능한 자원봉사가 있는 지 알아볼 수도 있겠고.
어쨌든 한 1년 동안 쌈빡하게 영어 공부하고 오면 좋을 것 같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영어를 쓸 기회가 많지 않아서 도통 늘지를 않는다.
태국이랑 필리핀에 갔을 때,
반짝 하고 영어 실력이 발휘가 되는데
한국에 돌아오면 영, 시들시들하다.
그도 그럴 것이,
멀쩡하게 한국말 쓸 수 있는데
굳이 영어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영어 연습하자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디자인 관련 자격증이나 워드, 엑셀 자격증 같은 것도 따보면 재밌을 것 같다.
일을 해보니 엑셀이나 워드, PPT를 잘 다루면
꽤나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입사에 영향을 미친다든지, 하는 그런 건 아닌데
엑셀이나 워드 작업이 많은데다가,
PPT를 쓸 일도 많아서
익혀두면 훨씬 처리 속도도 빠르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넓어질 것 같다.
음,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남자 냄새를 좀 맡았다.
일 하는 곳에는 모두 여자 선생님들 뿐이어서
도통 남자라고는 볼 일이 없었다.
동아리는 하고 있지만,
사실 동아리 친구들은 남자가 아니다.
(슬프다)
오늘 같이 자원 봉사 한 오빠도 재미있었고,
사회를 본 남학생은 참 비율이 좋았으며
장비를 담당한 남자 역시 멋있었다.
하,
연애 세포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할 때가 되었지, 암.
.
.
그래서 이제 할 일은,
내일 또 열심히 사무실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다.
늘 사무실에서 데면데면 하다가
오늘 행사일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사무실 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재밌게 일하고,
시간이 나면
'친족 성폭력 피해자 치료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이건 치료 매뉴얼인데,
공부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친족 성폭력에 대한 분석 자료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비가해 보호자(내 경우엔 엄마)가 친족 성폭력 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려한다는 조사 결과,
그리고 대부분의 비가해 보호자가
치료 과정에서의 협조를 보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조사 결과는
그저 상담 선생님의 입으로 그 말을 들을 때보다
훨씬 더 나에게 깊이 와닿았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비가해보호자들이
자녀들의 고통을 축소하고 은폐하려 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우리 엄마의 지독한 비도덕이 아니라,
뭔가 어떤 원인에 의해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며,
그것은
어떻게든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나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성폭력 사실을 외면하려 하는 것이
그저 우리 엄마가 되먹지 못해서라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그러나 만약 그것이
'현상'이라면
거기에는 길이 있는 것이다.
엄마도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희망'이고 '불빛'인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와의 관계가 가까울 수록,
성폭력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일 수록
피해자가 나타내는 부정적인 후유증이 심한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보통 10회 이상의 성폭력이 대부분이라고들 하는데,
10회라,
나는 아마 수백 번은 넘을 것 같은데.
성추행까지 합하자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성폭력 아래서,
나는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남아 그 일을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자랑스러워졌다.
그리고 애착 형성의 대상인 가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함으로써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 간에 적당한 경계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신뢰 관계 형성이 어렵다는 말은,
역시 나에게 한가닥 희망을 주었다.
이 역시,
원인에 의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공부하는 것은 꽤나 유익한 듯 싶다.
나를 표현할 '언어'가 하나하나 늘어가는 것 같고,
뭔가 내 세상에 계통이 세워지면서 안정되는 느낌이다.
.
.
그리고 법률 상담을 의뢰하고,
근무일자를 바꾸어야겠다.
동아리 공연 준비도 해야겠지.
시간이 난다면 공부도 시작해야지.
영어든, 컴퓨터든, 디자인이든.
뭘 할까나.
친구도 만나고.
저금도 하고.
앞으로 3개월 동안은 이렇게 산다.
그리고 아마 복학할 듯 싶다.
복학해서 공부도 더 해서
졸업하고 바로 NGO 단체에 들어가고 싶다.
.
.
4달 동안 빠져 있던 구덩이에서
드디어 빠져나왔다.
다음에 또 구덩이에 빠진다면
꼭 이 일기를 읽고
그 땐 조금 더 빨리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꾸 생각만 하게 되고
아무 결정도 내릴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건
지금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이 구덩이는 누가 파 놓았는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첨벙,
하고 빠져버리는 그런 구덩이다.
빠지기 전에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이 구덩이는,
빠지고 나면
빠졌다는 것 자체도 깨닫지 못할 만큼 나를 휘어잡아 버린다.
빠졌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니
나갈 수도 없다.
빠지지 않았는데, 어딜 나간단 말인가.
빠진지도 모른 채 빠져있는 것이다.
구덩이는 가만히 있지 않고
점점 더 그 넓이를 넓혀간다.
구덩이가 스스로 넓어지는 것인지
내가 넓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모른다.
그리고 그 넓어진 구덩이에 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간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서야 빠져나가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빠졌다는 것을 깨달으면,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가장 빨리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빠졌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다.
빠지지 않는 방법은 모른다.
그 구덩이가 왜 생기는지도 모르는데,
피하는 방법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언젠가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구덩이에 빠진 것을 빨리 알아채는 것이다.
유념하자.
<구덩이 체크 리스트>
1. 만나는 사람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는가.
2. 하는 활동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는가.
3. '살아있는 의미를 모르겠다'거나, '이 일을 하는 의미를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가.
4. 방정리가 되지 않는가.
5. 내 행동을 내가 조절할 수 없는가.
-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먹고 있다.
- 책을 그만 읽어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고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도 책만 읽고 있다.
- 일찍 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새벽까지 다른 일을 한다.
6. 한 순간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가.
7. 밀리는 일이 자꾸만 생기는가. 쌓이고 쌓이는가.
8. 설거지, 화장실 청소 등 기본적인 일들을 하지 않게 되는가.
위 사항들이 많이 맞아떨어진다면,
나는 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진짜로 할 고민이 있다면
궁금한 게 있다면
구덩이에서 나와서 해야 한다.
구덩이 안에는
답이 없다.
구덩이밖에.
앞으로 저런 상태가 또 찾아오면,
신속히 빠져나가도록 하자.
여유와 나태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항상 활달하고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에서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여유,
에너지가 사라지고 의욕이 사라진 상태에서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나태이거나, 우울이다.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은 나의 꿈이지만,
어떻게 단순하고 여유로울 것인지는 앞으로
알아가도록 하자.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 쉬는 것은
'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여유이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여유가 아니다.
그 둘을 반드시 구분하자.
.
.
삶 속에서 답을 찾고,
구덩이 속에 빠졌다면 속히 빠져나오도록 하며
우울을 '여유'로 착각하지 말기.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오늘 얻은 세 가지 깨달음이다.
3달을 머리를 굴려도 못 깨닫던 것을,
하루 몸을 굴려 얻었다.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닫게 된다.
삶에 대한 답은
삶 속에서 나온다.
.
.
부디 잊지 않기를.
잠시 잊더라도
이 기록을 보고
꼭 다시 되찾기를.
발도장을 꾸욱 찍어둔다.
훗날 다시 돌아와
다시 따라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