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기를 쓰고 싶어져서,
다시 글을 쓴다.
조금 전에 미래를 봉인할 봉투를 만들다가,
여기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얼마 전,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책을 읽었다.
생각 뒤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라,
그리고 그 의식으로 지금 여기에 있으라,
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줄이고
주변을 의식하면서 지금 여기에 있는 연습을 한다.
세탁기 소리를 의식해보고
자판을 치는 소리를 듣고
숨 쉬는 것을 느껴보고.
내 발가락에서 어떤 느낌이 나는 지 느껴보고.
확실히 에너지가 많이 모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생각은 가장 큰 축복이자 커다란 저주라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에 크게 동의한다.
그리고 생각도 습관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도.
나 역시 습관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 공상, 생각.
내가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하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여기에 있을 수 있게 됐다.
심리적 시간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나니까,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할 수 있다.
시간 속의 나,
맥락 속의 나,
과거의 연속선상에서의 나는
모두 관념일 뿐이다.
나는 오로지 지금에만 존재한다.
과거에 나는 존재했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런 것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일 뿐,
내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지금 이순간 뿐이며,
미래도 아니다.
높은 가능성으로 미래에도 나는 있을 것이지만,
그런 것은 내 생각 속에서 관념적으로 상상되는 것일 뿐이다.
.
.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나 자신.
지금 이 순간.
이것만이 나의 진짜 존재다.
나머지는 모두 기억.
관념,
이다.
.
.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과거를 지배하고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한다고 착각하지만,
내가 나에 '대해서' 모두 알 수 있고
분석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결국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나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과거에 어땠는지,
미래에 어떨 것인지,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파악할 필요도 없다.
다만 지금의 내가 누구인가,
만 알면 그뿐이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유를 알 수도 없다.
사람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며
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그저
일어났을 뿐이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
.
아빠가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친척들에게서 연락이 오고,
용서해달라며
고소를 취하해달라며,
만나자고 요구해왔다.
나는 큰아빠와 큰엄마, 작은 고모를 만났다.
아빠가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내일 가서 고소를 취하하자고-
나는 이야기했다.
'내가 아빠를 만나보고,
아빠가 반성하고 있는 지 확인할 것이다.
그게 먼저다.'
물론 고소를 취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고소를 취하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흘림으로써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뿐이다.
나에게 사과를 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내가 고소를 취하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더 저자세로 나올 테니까.
발톱을 드러내면 발톱이 돌아올 뿐이다.
아빠가 그동안 나에게 잘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내가 왜 고소를 했는지, 이야기했다.
친척들은 자신들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정확하게 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물론 나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내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실제로 나도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찔릴 때가 많다.
나도 배낭 여행도 가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다양한 경험들도 하고 싶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싶다.
운동도 했으면 좋겠고.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할 수도 있지만,
단지 지금이 아닐 뿐이다.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큰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고 싶다.
그래서 하는 중이다.
더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나 자신의 의심에.
그만 흔들리고,
이제는 집중하고 싶다.
굳이 이것에 매몰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질문은 타인과 자신에 의해 계속 받고 있는 질문이다.
답은 모르겠다.
그냥 그러고 싶다.
성격 탓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 수도 있겠다고 훗날 스스로 평가내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은 에너지를 모아 이 일을 하고 싶다.
얼마나 지속될 지는 모르겠다.
경험상 보면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짧게 끝나버릴 수도 있다.
한 달이든 육개월이든
내 모든 에너지를 모아
이번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싶다.
.
.
다음 주에는 아빠 면회를 갈 것이다.
가서 내가 그동안 썼던 일기들을 보여줄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그와 나눌 것이다.
내가 그동안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분노,
원망을 표출할 것이다.
정말 하고 싶다.
그리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