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박이 부른 right here waiting을 들었다.
듣고 정말 좋아서 계속 들었는데,
노래보다도 버나드 박의 기분이랄까 감정 같은 거에 더 동요되어버렸다.
사실 이건 TV 프로그램이고
거기서 연출한 것에 이렇게까지 공감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뭔가 짠, 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재미교포, 세탁소를 하시는 부모님, 먼 타국에 와서 외로움에 가득 찬.
그러다가 가족을 볼 수 없는 외로움, 그리움-
이라는 내 안의 숨은 감정이 올라와버린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잠이 잘 안 온다.
내일 외출 할 일이 있어서 피부 생각해서라도 얼른 자야하는데,
잠이 도무지 안 와서 그냥 포기했다.
이런 날은 내가 아무리 자려고 눈을 감아도,
상념에 상념만 꼬리를 물어 더 말똥말똥해질 뿐 죽어도 잠은 안 온다.
그럴 바에야 그냥 울다에 쏟아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정말 오랜만에 모바일로 일기를 써본다.
집을 나와 친구네 집에서 지낸 지 3개월도 꽉 차고, 2주 정도가 넘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다.
이것저것 하면서 정신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적응하느라 집생각이 별로 안 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재판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가고,
새로운 집에도 적응을 하고 나니까 집이 그립다.
집에 가고 싶다.
그리고 친구네 가족들을 볼 때마다, 내 가족이 그립다.
나에게 가족이 좋은 존재였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가족이 있긴 있었다. 저녁을 같이 먹고, 쉬는 날엔 같이 놀러를 가던.
아빠가 빠지고 그 자리에 할머니가 계시게 되었을 땐 더 좋았다.
쉬는 날에는 산에 놀러가거나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내가 놓고 싶지 않아했던 소소한 행복이고,
결국에는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부분이지만
그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립다.
같이 있던 그 시간의 느낌이. 그 노랑빛 따스함이 그립다.
친구네 가족들이 서로 모여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은 소외감이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아무리 나에게 잘해주신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은 가족이라고. 당연히 서로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외로워진다.
한 번은 친구가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울컥한 적도 있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고 생각하면서.
그동안은 약해지지 말아야지, 스스로를 붙잡으면서 버텨왔었다.
재판이라는 과정을 스스로 해내야했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어깨에 힘을 좀 빼고 나니까,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뭐, 느껴지는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감정이 느껴지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긴 하다.
로봇같은 상태보다는 훨씬.
엄마도 보고 싶고, 동생도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가족이 그립지만,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모습의 가족은 내게 없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과 나, 라든지
엄마와 할머니와 동생과 나, 같은.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넘겼듯,
나 역시 진실을 얻기 위해 가족을 포기했다.
인어공주는 다시 목소리를 돌려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결국 사랑하는 왕자를 죽이지 못한다.
나 역시 만약에라도 가족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더라도
그 대가는 진실일 것이고, 나는 진실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센치해지는 것 정도만 하도록 하자.
뭔가 더 스스로를 동정하면서,
다시 우리 가족이 완성되는 방법은 없을까 뒤척거리진 말고.
없어, 하나야.
이미 모든 게 달라졌는데 어떻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거야.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되.
동생은 여전히 내 동생이고,
외가 친척들도 여전히 내 친척이야.
모두 잃었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도 말고.
그리고 가족은 결혼을 통해서도 다시 만들 수 있고!
뭐 밝고 희망적인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니까.
.
.
고등학생 때, 나는 기숙사에 있었다.
집은 가까운 편이었지만, 아빠를 피해 기숙사에 들어갔었다.
물론 집에다가는 공부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엄마는 자습 쉬는 시간때마다 뭔가를 가져다주곤 했다.
빨래를 해서 가져다주기도 하고,
부침개나 간식같은 것들을 사다주기도 했다.
가장 기억이 나는 건,
우유를 넣고 만들어준 김치 부침개이다.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는데,
친구들이랑 나눠먹으라고 잔뜩 가져다줘서, 친구들한테 나눠주는 맛도
있었다.
이런 날도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 사감이 모든 학생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자습시간에 너무 떠들었다고, 벌을 준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밑에 와있는데 갈 수가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2주만에 보는 엄만데, 보고 싶은데 보내주지 않는 사감이 너무 미웠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책상에서 엎드려서 울었다.
엄마는 내게 그런 존재다.
사랑과 미움이 범벅된, 이제는 그 색깔마저 알아볼 수 없는.
하지만 분명하게 그리운, 어떤 껄끄런 부드러움이다.
.
.
엄마, 보고 싶어.
미워. 나빴어.
어떻게 한 번도 전화를 안 해?
내가 걱정되지도 않아?
그냥 없어지니까 좋아?
마음 편해?
남자친구랑도 잘 지내고?
난 집에 가고 싶어.
나도 우리 엄마랑 할머니랑 동생이랑 있고 싶다.
내 친구는 그러는데,
난 못 그래서 슬퍼.
잘 지내.
지금쯤이면 당연히 세상 모르고 자겠지.
두시간 후면 일어날 거고.
오늘도 수고해.
그리고 시간 나면 내 생각도 좀 해줘.
잘 자.